「76극장」 실험극『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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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0평정도되는 무대와 계단식 객석에는 모두 가마니를 깔아 하나의 원형무대를 만들었다.
무대쪽의 벽면에는 용비어천가·독립선언문·훈민정음의 일부를 적은 커다란 종이가「포스터」처럼 붙어있다.
신촌역암 76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젊은 극단「76극장」의 실험극『순장』(김영덕작·기국채연출)의 무대모습.
여기에 흰무명두루마기를 입은 남자연기자 여섯과 검은 옷차림의 여자연기자 셋이 원형무대의 곳곳에, 때로는 관객의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앉아 있다.
극이 시작되면 두사람의 배우가 일어난다. 이들은 이른바 도굴꾼.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산 몸종들과 금·은보화가 함께 파묻혀야했던 순장묘를 파헤치러온 것이다.
이들은 관객틈사이를 누비며 관객과 관객의 소지품을 고분속의 부장품인양 감정하는등 관객의 즉흥적이고 자연스런 참여를 끌어들인다.
극의 진행은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역사속에 매장되어있던 3가지 신화-용비어천가·해모수설화·수로왕설화-가 도굴되어 그 진실과 허구성을 현대의 햇볕속에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물위의 큰범을 한손으로 치시며」, 「싸우는 큰 소를 두손에 잡으시며」등 이성계의 성인신력을 찬양한 용비어천가를 비웃고 김해금씨의 수로왕설화를 금권정치의 표본으로 풍자한다.
해모수설화 역시 자기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대중조작일뿐임을 이들은 일련의 떠들썩한 몸짓과 몇가지「해프너」을 통해 암시한다.
신화의 허구성은 극의 마지막부분에서 3가지신화를 상징하는 세여자배우를 「비닐」 봉지에 싸서 관객에게 경매함으로써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처음에는 1천원, 7백원, 5백원으로까지 내려도 팔리지않는 신화.
젊은 연극인들이 어려운중에도 자기공간을 확보하고 대담한 실험극을 시도했다는데서 의미를 찾을수있는 『순장』은, 그러나 관객의 참여라는 이름아래 좀 지나친듯한 장난과 의미없는 「해프닝」이 너무 잦았다는 비만도 받고있다. <이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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