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 과외공부 풍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 교육의 최대 고질병인 지나친 과외열풍을 없애기 위해 실시한다고 했던 중·고교 평준화 시책이 그 열기를 식히기는커녕 도리어 격화시키는 결과를 빚어왔음은 참으로「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른바 고교 추첨 진학제도가 실시된 후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뒷전에 밀리고 누구나가 과외공부 없이는 상급학교 진학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생긴 것은 근자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서울시의 경우 전체 가구의 27·2%인 41만4천여가구가 과외교사를 두고 있으며, 한해동안의 과외비로 6백15억원이 넘게 지출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대통계연구소가 조사한 『78년 서울시 생산 및 시민분배소득보고서』 에서 밝혀진 것으로 실제 과외비는 관인 입시학원비를 포함하면 가구당 30만원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곧 서울에서만 연간 1천5백억원 가까운 돈이 과외비로 지출되고 있다는 것으로 학령기 자녀를 둔 가정의 가계와 국민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고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도시, 고교평준화 시책이 학부모들의 과중한 과외비 부담을 비롯하여 누적된 교육부조리를 완화하고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한다는 이상론에 바탕해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본래의 목적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 채 각급교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저하, 사학을 위시한 모든 학교의 자율성 위축,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에 따른 전학생 과외공부풍조를 불러일으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했다면 이 사태를 이 이상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사립학교를 포함한 모든 학교에 대한 똑같은 재정적 뒷받침을 해줄 수 없는 국고재정형편에 비추어 평준화시책은 처음부터 탁상공론적인 허구의 제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6·25사변 후 25년동안 공교육의 대종을 이루는 문교예산은 약1백50배가 늘어났지만, 폭발적인 교육수요의 증대로 그 대부분은 의무교육의 수용능력확대에 투입되고 학생 개개인에 대한 단위교육비는 아무런 개선도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공교육비가 총예산의 17·5%, GNP의 3·2%에 불과한 여건하에서 재정적 뒷받침도 없이 모든 학교를 평준화시키겠다고 한 착상 자체가 도시 불가능한 정책적 「미스」였음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서울시의 경우 공교육 투자가 2백억원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 평준화 시책이 이 이상 존속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국민학교의 과밀교실 해결은커녕 중학교 수업의 2부제 실시가 운위되고있다는 것은 결국 교육투자의 이 같은 부조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궁색한 교육재정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민간의 투자를 진작시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평준화시책을 일부 중단하여 우선 사학의 자율성 보장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또 설혹 국가 재정상의 문제가 충족된다 하더라도 학교마다의 자율성과 특색을 보장하는 것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청이란 점도 다시 한번 강조돼야 할 과제라 하겠다.
똑같은 여건하에서 경쟁없이 고교진학을 한다는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안량한 인생관을 심어주는 것으로 개인을 위해서나, 국가발전을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완벽한 제도란 있을 수 없다. 제도가 좋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는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을 거치게 마련이다.
특히 교육제도는 자주 변경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고 입시제로의 연원이 몰고올 충격파 또한 클것이라는 것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고교추첨진학 제도의 모순점을 이상 더 방치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본다. 교육제도전반에 걸친 개혁의 단안은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임을 밝혀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