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 인터뷰] 美 워싱턴포스트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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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바람직한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가족 소유의 언론은 제대로 사회의 공기(公器)노릇을 할 수 없는가.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 전쟁 보도를 너무 미국 중심으로 했는가. 미국 워싱턴 포스트 그룹의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을 만났다.

김영희=워싱턴 포스트 같은 좋은 신문을 만드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레이엄=사람입니다. 높은 안목을 갖고 유능.공정.정직한 기자를 채용하는 편집책임자가 있어야죠.

김=편집인을 고르는 기준은 뭡니까.

그레이엄= 판단력입니다. 언론활동에 관한 큰 판단을 하는 사람을 편집인에 임명합니다.

김=세계적인 언론사의 최고경영자로서 귀하와 귀하의 어머니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자주 비교됩니까.

그레이엄=어머니는 특이한(unique) 분이셨어요. 어머니는 가장 어려운 도전을 가장 훌륭하게 처리했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큰 기사를 많이 쓰겠지만 어머니 시대의 워터 게이트 사건 같은 기사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김=한국에서는 지금 편집권의 독립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주 또는 회장은 발행인을 겸한 경우나 그렇지 않은 경우나 신문의 편집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요. 미국에도 이런 문제가 있습니까.

그레이엄=미국, 아니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발행인(사주)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균형감각이 있고, 정직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편집인을 고르는 것입니다. 더불어 일할 수 있는 편집인 말입니다. 어머니와 편집인 벤 브래들리는 '협의의 룰'이라는 것을 지켰어요.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브래들리는 어머니와 함께 보도방향을 의논하고 결정했어요. 편집인 브래들리는 기사의 모든 측면을 발행인이었던 제 어머니와 상의했습니다. 어머니 쪽에서도 브래들리가 탁월한 편집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줬어요. 사주는 편집인과 기자들의 능력을 존중하고 편집책임자들은 발행인과 사주를 존경하면서 서로 토론하고 이해하는 신문이 좋은 신문이라고 생각해요.

김=워싱턴 포스트는 뉴욕 타임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가족소유 신문인데 가족소유 언론과 공공(公共)소유 언론의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그레이엄=미국의 신문들은 대부분 공개기업(public corporations) 소유인데 워싱턴 포스트는 우리 가족이 회사의 의결권주(議決權株)를 가졌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도 공개회사(public company)로 주주들에게 책임을 집니다. 가족소유의 장점은 단기적인 손익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는 회사들과 달리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사주에게도 친구가 있게 마련인데 편집인에게 어떤 기사를 키워라, 줄이라 또는 죽이라는 지시를 하고 싶은 때는 없습니까.

그레이엄=어머니는 1963년부터 78년까지, 나는 79년부터 2년 전까지 발행인이었지만 어머니와 나는 40년이라는 이 기간에 한번도 편집인에게 기사를 죽이라거나 바꾸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어요. 어머니의 친구들은 항상 워싱턴 포스트의 비판을 받았어요. 그러나 좋은 친구들은 자신의 사주나 발행인의 친구건 아니건 신문의 공정하고 정직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것이 워싱턴 포스트의 자랑스러운 전통입니다.

김=미국 언론이 이라크 전쟁을 미국의 입장에서만 보도하고 전쟁의 부당성과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는 비판이 높습니다.

그레이엄=동의할 수 없습니다. 뉴스위크의 예를 봐도 국제판 편집국장 파리드 자카리아가 쓴 특집기사는 미국의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 공정한 기사였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스위크 기자들은 전쟁과 외교의 모든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김=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관한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적절한 권언관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레이엄=미국에서는 권언관계가 분명히 정의돼 있어요. 헌법이 정부로부터 언론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합니다. 소유문제를 포함해 언론의 어느 측면도 정부가 참견할 수 없어요. 정부가 비판받을 일을 하면 신문은 정부를 비판해야 합니다. 그건 신문으로부터 부당하게 비판을 받는다고 생각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이래의 전통입니다.

김=권력과 언론은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이론에 동의하십니까.

그레이엄=권언관계가 너무 가까워서는 안됩니다. 언론이 때로는 정부가 좋아하는 기사도 쓰지만 대개는 정부가 싫어하는 보도를 합니다. 언론의 역할은 정부와 적대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보도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을 많이 보도하는 것입니다. 닉슨 정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에 보복을 하려다가 역작용을 불렀습니다.

김=미국의 언론사 간부들도 집단으로 백악관에 식사초대를 받는 일이 자주 있습니까.

그레이엄=내가 마지막으로 백악관 만찬에 초대받은 게 1994년이니까 대답은 "노"입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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