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부터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들과는 인연이 닿았었다. 조영남 「트윈·폴리오」가 좋았고 그들의 노래가 좋아서 나도 대학생이 되면 「기타」를 쳐야지 했었다.
70년 교복을 벗었으나 대학낙방과 함께 을씨년스러운 19세의 재수생이 되었고 그 해 엄마가 사주신 나의 생일선물인 「기타」는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좋은 친구가 됐다.
혼자서 퉁탕대며 노래를 익혔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통「기타」 부대(?)와 만나서 반갑게들 어울렸고 나는 대학(서강대사학료) 1년생이 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노래는 「아르바이트」로 생각했으나 일과 학교 틈에서 퍽 힘들게 뛰어다녔고 사람들은 나를 학생 가수라고 했다.
통「기타」 못 치면 간첩이라고 하던 때가 그 시절인데 학교 친구들이 최루탄 연기 속에서 『아침이슬』을 합창하는 소리를 듣고 머리카락이 주뼛했었고 그 노래는 이미 내 것이 아니어서 무서웠다.
노래처럼 대중과 가까운 것도 없고 들어서 좋으면 좋은 노래라고 생각된다. 신중현씨가 해온 「그룹」이나 흘러간 가요나 이미자씨의 노래나 「팝·스타일」의 노래나 가릴 것 없이 좋은 건 좋은 것이다.
대마초 사건 덕에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만 푹 쉬게 되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요계도 이런 저런 노래가 각양각색으로 나와야 그 중에서 추러지는 법이다.
법석거리고 자주 만들어내고 가지 칠 것은 치고, 그러다 보면 좋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남게 된다.
대중처럼 정확히 또박또박 반응을 돌려보내는 상대도 없다.
「디스크」 제작자들은 장사되는 노래와, 좋긴 하지만 장사가 안 되는 노래로 나누고 있으나 강사가 안 되더라도 좋은 노래는 「디스크」로 나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학비마련이 되면 학교가고, 형편이 안되면 못 가고 하면서 작년에 드디어 8년만에 졸업을 하니까 정말 「사회인」이 된 셈인데 이미 9년 동안 사회생활은 한 터이고 참 막막하다.
8년간 적을 두고 있으면서 방송과 노래 일 하면서도 『난 학생이니까….』로 버텼는데 그나마 이젠 학생도 아니니까 봐달랄 수도 없다. 결국 계속해서 좋은 노래로 가요를 아끼는 여러분들에게 보답하는 길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