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밀착된 연극에 전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나는 70년대에 신인으로서 연극활동을 시작해서 이제 70년대의 폐막과 함께·기성의 딱지가 붙은 연극인이 되어있다. 그 기간에 적지않은 번역과 연출을 해댔지만 그것들이 지나간 10년의 연극사에 기록될 의미를 생각할 때 자괴를 금할 길이 없다. 다만 한가지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기간에 내 개인의 작업을 돋보이기 위해 전체의 질서를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해본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각별히 강직하다거나 남달리 유복하다거나 또는 어리석은 백치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한 작업이 그만큼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무가치한 작업들을 그리도 뻔길나게 해 왔던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의 70년대 명세서가 되어줄 것이다.
반드시 영국의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이나「프랑스」의 「코메디·프랑셰즈」나 독일의 「베를리네·샤우스필하우즈」같은 세계 정상급의 극단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코리아」의 수도 서울 한 귀퉁이에 아담한 극장을 마련하고 연극을 「천직」으로 알며 생활하는 단원들과 함께 인근 주민을 상대로 그들의 생활과 밀착된 연극, 그들의 심성을 고상하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연극, 그들에게 소박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연극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수 있다면 한 연극인의 일생으로 보아 보람있는 일이되지 않겠는가.
이같은 극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런 뜻에 찬동하는 동료들을 규합해야 하고 규합된 동료들과 함께 전문적인 연극수업을 쌓아야 하며 일방으로는 재정적인 토대를 천천히 다져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70연대에 해온 작업들은 따라서 당장의 공연보다는 그같은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키 위한 한 점으로 모여졌었다.
그러나 70연대의 기류는 착실하게 노력해서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는다는, 양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부인과 부동산투기꾼 같은 불세출의 기린아들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 연극에서 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수많은 「인파」가 나의 연극작업의 대열에 가담했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장래에 대한 불안, 타분야의 유혹, 눈앞의 작은 이해, 동료간의 사소한 불신탓도 있었겠으나 당장 기적이 일 것 같았던 환상적 기대에 대한 배반이 결정적인 이탈의 원인이 되었다.
이같은 70연대의 체험은 당사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으나 80연대를 위한 교훈이 되고 있다. 80연대는 결코 우리에게 기적을 선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뿌린만큼 거두게 해 줄 것이다. <정진수, 연출가·극단 「민중극단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