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대화는 하지만 싸울 땐 싸우는 게 이스라엘의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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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12면

베긴-사다트 전략연구센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이 지난 8일 시작된 이후 닷새째 이어지면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숫자가 11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양측에 “무력 충돌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으나 사태는 악화일로다.

이스라엘 안보전문가 에프라임 인바르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지역 분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했지만 그 해결은 요원하다.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 관계 정상화를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이름을 딴 베긴-사다트 센터(BESA)의 에프라임 인바르 소장을 지난 5일 만나 화해 방안을 물었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안보전문가인 인바르 소장은 세종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는 인터뷰 자리에 유대교 신자의 필수품인 키파(신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기 위해 정수리 부분에 쓰는 소형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이번 사태를 두고 “합리적 행동과 자제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합리성의 정의가 뭔가. 어차피 주관적 개념 아닌가. 양측에 다 물어보라.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합리성을 내세우는 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전형적 접근 방식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는 현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서 합리성을 굳이 따진다면 그건 갈등의 불을 약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불을 끄는 방법은.
“단언컨대 없다.”

-너무 비관적 아닌가.
“이스라엘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과학자로서 하는 얘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의 골은 너무 깊다. 팔레스타인의 목표는 이스라엘의 멸망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스라엘과 함께 해결할 수 있겠나. 이런 갈등을 합리적으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너무 낭만적이다. 지금은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관리가 목표가 돼야 한다. 그게 바로 ‘합리적’ 현실이다.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죽음을 숭배하는 종교집단과 같다. 그들과 싸워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피해를 입는 건 아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에는 하마스의 로켓포가 날아 들어오고 있다. 사이렌 소리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전쟁 중에도 번영을 이룩하는 건 가능하다. 한국도 그 좋은 예가 아닌가. 6·25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끝났다. 안보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우리의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그런 각오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짓누르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사태 해결은 불가능한가.
“불가능이라는 말은 너무 단정적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갈등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정도로 해두자. 지금부터 해결의 열쇠를 찾아나선다면 먼 미래엔 갈등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당사자들이다. 국제사회의 역할 운운하지만, 결국 해결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직접 나서야 가능하다. 국제사회가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주인공인 당사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용 없다.”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정은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재로 체결됐는데.
“당시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터 대통령 중재로 만난 건 역사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한 건 한 해 전인 77년 사다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예루살렘 전격 방문이었다. 그리고 이 방문은 베긴 총리와 사다트 대통령이 주도한 합작품이다. 원래 미국 측에선 둘이 예루살렘이 아닌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길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지도자는 더 강력한 합의를 위해 예루살렘을 택했고, 이 흐름이 이듬해 캠프 데이비드 협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결단이었다.”

-현 중동 정세를 어떻게 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에선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로하니 대통령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서방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전범 독일 잊지 않지만 실리 외교 선택
인바르 소장을 만난 5일은 한·중 정상회담 다음 날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대해 인바르 소장은 “화려해 보이는 성과에 취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 냉각기에 시 주석이 북한에 앞서 한국을 단독 국빈 방문했는데 동북아 정세는 어떻게 보나.
“지금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냉정한 현실을 묵과하면 안 된다. 중국은 엄연히 북한의 혈맹이다. 중국의 엄호 없이 북한은 생존할 수 없다. 냉엄한 현실에서 당장의 달콤함에 빠지지 않고 냉철한 머리를 갖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한·일 관계에서만큼은 ‘냉철함’을 앞세우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인데.
“내가 볼 때 일본이 최근 보인 모든 움직임은 중국의 대국굴기에 따른 반응의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한다. 물론 한국에 일본은 과거사로 인해 복잡한 존재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를 최고로 꼽는 나로서는 이스라엘의 예를 들고 싶다. 우린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600만 유대인에 대해 가했던 핍박을 절대 잊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이 세계 질서 및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직시했고,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렇다고 용서가 망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스라엘의 결정은 이스라엘의 이야기이고, 한국엔 나름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선택은 결국 각자의 몫이고, 그 책임도 각자의 몫이다.”

-한국 매체에 인바르 소장이 “한국은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잘 모르는 순진한 나라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전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던 발언이 소개된 적이 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한국이 핵보유국을 이웃으로 두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나왔던 말로 기억한다. 한국에 북한은 이스라엘에 하마스가 그렇듯, 매우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이웃이다. 캐나다는 미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걱정할 게 없다. 미국은 책임 있는 국제사회 지도 국가이니까. 하지만 북한은 어떤가. 불량국가(rogue state)가 핵보유국까지 됐다. 나로선 ‘행운을 빈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북한은 이스라엘에도 위협이다. 시리아·이란과 무기 및 핵 관련 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한국의 안보 수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난 다자간 노력으로 해결되리라 믿지 않는다. 이건 남과 북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측과 항상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싸울 때는 싸운다.”

-6자회담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난 미국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미국을 잘 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힘에 기대는 것에 반대한다. 서방은 때론 너무 순진하다. 북한 문제는 한반도의 문제이며, 다른 이가 아닌 당사자들이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에프라임 인바르 이스라엘 베긴-사다트 전략연구센터 소장. 바르-일란대 정치학과 교수. 미 존스홉킨스대·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랜드연구소·하버드대·MIT·컬럼비아대·예일대·옥스퍼드대 등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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