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상황에서의 교수와 학생의 재회 이규호<연세대교수·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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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나라 대학들이 다시 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그 동안 상황이 많이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의 역사적인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은 아직 두고봐야 알 것 같다.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한평가는 일정한 시간적인 거리를 요청한다는 원리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주변에 그 동안 일어난 이 변화의 의미는 우리가 지금부터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민족의 운명을 건 이 흥분된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학생들에게 정치에는 관심을 갖지 말고 면학에만 힘쓰라고 상투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학생들은 역시 우리 국가사회의 내일의 주인공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학생들은 오늘의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거시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좀더 시야를 넓혀서 그 안에서 우리의 국가적인 사회적인 현실을 바라보아야 되겠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하나의 생활권이라고 하는데 그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그 역학관계도 더욱 복잡하다. 최근에는 개발도상국가들과 발전된 산업국가들 사이의 남북대립이 세계적인 지성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하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많은 식량들이 애완용 동물들을 위해서 소비되고 있고, 그리고 양쪽의 생활수준의 차이는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있다는 것이다. 많은 신생국가들의 자주독립을 위한 역량을 기름에는 노력도 많은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계 안에서 우리의 조국은 어디까지 와있고 어디에 서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국가적 사회적 현실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국내적인 모든 사건들에 마음졸이면서 관심을 쏟지 말고 세계를 바라보면서 거시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내일의 민주사회의 지도자들이다. 어떠한 정치적인 신념도 그것이 늘 개방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거치지 않으면 독단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개방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는 자기의 신념이나 이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서만 가능하다. 완전무결한 이론이나 신념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게만 기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독단화된 신념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폭력에 호소하는 수가 있는데 폭력은 늘 반작용으로서의 폭력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고전적인 대학의 이념에 따르면 대학은 진리의 탐구를 위해서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들과 그들을 스승으로 삼고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의 자율적인 공동체라고 한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대학들이 그 아래 놓여있는 조건들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 대학이라는 공동체가 그 고유한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우 무거운 책임이 함께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질서를 지키고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야 참다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하나의 과도기에 살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 대학들이 진리의 탐구를 위해서 요청되는 자율성을 보존하고 참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시험하는 과도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일부 학생들의 눈에는 우리 교수들이 매우 못난 모습으로 비칠는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인간은 늘 그의 삶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과 또 오늘의 교수들의 모습은 내일의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렇게 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만약 학생들이 동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교수들과 더불어 정다운 대화를 심화하게 되면 학생과 교수라는 직업적인 관계는 제자와 스승의 바람직한 관계로 승화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교수와 학생도 국민이고 시민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책임 있는 참여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정치적인 현실에 너무 깊이 참여해서 흥분하게 되면 학문은 끝난다.
왜냐하면 학문의 연구는 그러한 현실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있는 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변화된 상황 아래서의 우리의 교수와 학생의 재회가 학문연구를 통해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공동체로서의 대학의 참다운 면목을 드높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 약력>
▲26년=경남진주출생
▲62년=서독「튀빙겐」 대학교철학전공(철학박사)
▲63년=중앙대교수
▲64년=연세대교수(현재)
▲저서=『현대철학의 이해』 『말의 힘』 『앎과 삶』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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