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절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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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속담에 『종자보면 춤춘다』는 말이 있다. 오동나무의 씨를 심어 거목으로 키우고, 그때 재목을 켜서 가야금을 만들어 곡조를 타면 어깨가 절로 들썩하리라는 생각을 씨만 보고드 미리 한다는 것이다.
『새벽달 보려고 초저녁에 나앉으랴』는 속담도 있다. 때를 분간 못하고 공연히 서두르는 사람을 비양거린 말이다,
『바늘 허리에 실 매어쓸까』라는 속담도 익살스럽다.
『은근과 끈기』를 생활의 미덕으로 여기는 옛사람들은 이런속담으로 성급히 구는 사람들에게 절제를 교훈했다.
바로 요즘 고박대통령의 국장에 참석했던 「밴스」미국무장관은 이한성명에서 우리 국민의 『화해와 절제의 정신』을 고무하는 대목이 있었다. 글세, 칭찬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이나, 어느편이든 불쾌하지는 않다.
「화해」라는 뜻으로 「밴스」가 선택한 어휘는「컨실리에이션」(consiliation)이었다. 「랜덤·하우스」사전의 어원풀이에 따르면 이말은 『회합한다』『모으다』『단결하다』등의 뜻에서 비롯되었다. 이를테면 의사를 소통하고 뜻을 모아 힘을 합친다는 뜻이 어울려 『화해』라는 단어가 탄생한 것이다.
「절제」를 뜻하는 「모더레이션」(moderation)은 원래 종교용어다. 성직자를 만들어 내는 의식을 그렇게 불렀었다. 지금은 극단적인 것, 지나친 것, 격렬한 것의 반대어로 쓰인다.
이말이 정치적으로 사용되면 『온건』·『중용』·『절제』등의 뜻을 갖게 된다. 한문으로 『정사』라고 번역하는 것도 재미있다. 「중용」이란 반현반은 또는 동과 부동사이의 완전한 균형상태를 비유할 수 있다.
이런 균형은 어느 편에서나 절제·자기억제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절제, 그 자체는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균형의 미덕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는 고통이다. 공자의 손자 자사자같은이는 그런 경지를 『감미롭다』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동양에선 일찌기 「화해와 절제의 정신」을 군자에게서 찾고 있다. 서양식으로 말하면「젠틀먼·십」이다.
그러나 「젠틀먼」이든, 군자든 그런「매너」를 갖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사람이 군자나 「젠틀먼」이라면 낙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군자나 「젠틀먼」이 되려는 노력에는 누구나 인색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긍지이며 보람이기 때문이다.
실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군자의 마음가짐으로 화해와 절제의 미덕을 갖추어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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