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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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는 분명히 위기의 시대이며, 불안의 시대다.
비리와 모순의 끊임없는 연속은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혼돈과 초조 속에 휘말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위험한 고비」들의 점철이었으며, 인간은 그 속에서도 언제나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인공이었다.
근대사는 바로 그런 인문의 자아발견, 인간성의 자각으로 그 서장을 장식하고 있다.
비로소 인문은 자주·자율적 이성을 통해 자기확립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자기확립의 기초는 품격을 갖추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품격을 갖는 것을 이상으로 삼으며, 그 속에서 삶의 보람도 의미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품격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향훈과도 같은 것이어서 올바른 교육과 오랜 시문의 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인생의 엄숙한 교훈이기도 하다.
달리 생각하면 이런 마음의 자세야말로 역사를 이끌어 가는 은연한 힘이며 희망의 원천인 것도 같다.
난세에 처하여 마음의 평정(애터랙시아)의 덕을 강조한 것은 비단서양철학뿐만이 아니다.
특히 동양의 성현들은 무애무우·한적·유유자적 등을 강조했다.
동양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이 낱말들은 필경 유장한 역사의 파란 속에서 얻어진 생활의 지혜이며 동양인의 기질이 되고 있다.
「강호객인」(두보)이나 「동파거사」(소동파)와 같은 한가한 심정은 현대와 같이 능률과 정확과 공명을 추구하는 시속으로는 한낱 무기력과 우둔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류에 민감하고, 풍파에 의연하지 못한 무리들에게 이들은 누구보다 먼저 냉소를 던져 주고 있다.
중국의 어느 옛 학자는 『성현은 부언하고 능자는 담하고 우자는 논한다』고 말했다.
새삼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우리는 어느 사이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그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조차 포기하고 시속의 현기 속에 살아온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 노력은 번민이나 탄식이나 초조나 절규에서 보다는 마음의 평쟁과 유유자적에서 비롯된다.
-우태정자 발평천광, 발평천광자 인견기인.
장자는 이 한마디로 평정심을 세파하고 있다. 『마음이 태연히 안정되면 자연의 지혜가 나타나며 자연의 지혜가 나타나면 자신의 참 모습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은 역사상 춘추에서 전국에 이르기까지 혼란과 풍운을 겪었다. 그 무렵엔 일세를 지도할 권위도 철학도 없었다. 바로 이 시대에 장자와 같은 철인이 나타나 마음의 평정을 교훈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 비춰 보지 않고 풍요한 물에 비춰 본다. 고요이 안정해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능히 멈추게 할 수 있다』
(인막감어류수·이감어지수 유지 능지중지).
이런 철학은 오늘까지도 동양인의 마음속에 깃 들어 정밀과 겸양을 미덕으로 삼게 되었다.
일면 우둔해 보이지만 그것은 오랜 인고 속에서 갈고 닦은 지혜이고 보면 동서와 시공을 초월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명상과 정관없이는 어떤 조화도, 합리에도 이를 수 없다. 조화와 함께 합리를 잃은 개인이나 사회는 또한 발전도, 희망도,보 람도 찾을 수 없다.
격동과 경악과 당혹의 세태일수록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새삼 시류의 맥락을 짚어보며 그런 감회를 억누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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