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목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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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l929년은 인학사상 쉽게 잊을수 없는 해다. 선진공업단으로부더 당당국, 대원공급국동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국가들은 이해부터 세계공황에 휩쓸려 들어다.
그 피급의 속도. 영향의 심각성. 지역의 넓이, 기문의 길이등에 있어서 이때의 공황은 가히미노유의 규모였다.
우선 공장들이 「스위치」를 내리면서 실업자의 수는 날로 급증했다. 미국에는 한때l천만명의 실업자를기록, 전노동인구의 7분의 1이 완전히 직업을 잃었었다.
공황의 파국적인 상태는「뉴욕」과 「시카고」의 전 은행의 지불정지에 이르는 사태까지 몰고 갔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의GNP(국민총생산)는 1929년년이래 계속 떨어져 4년후엔 절반정도로 전락했다. 세계 무역의총액도 4년사이에 3분의l로 줄어들었다. 『자본주의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됐다』 는 성급한 발언도 있었다. 그런 공황이 무려4년이나 계속돼었다.
미국의 경제학자「갤브례이드」는 바로 이 공황의 시작일을 l929변 10월24일로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날온 목종일이었다. 마라서 「갤브레이드」는 『암흑의 목요일』이라는 비장한 표현을 하고 있다.
잠시 50년전 바로 그날의「뉴욕」시 풍경을 설명해 보만-.
우선 시민들의 눈초리가 날카로와져. 마치 성냥불을 그어대면 금방 불길을 토할것 같았다고 한다. 「뉴욕」 경찰총장은 서둘러 「월·스트리트」가에 특별경찰을 배치하고, 시민들의 동정을 실필정도였따.
그날 「뉴욕」 의 증권가에선 1천2백89만4천6백50주가 거래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가는 무수한 주주들의 꿈과 희망을 산산조각내는 휴지값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런 불길한징조는 20일부터 시작되었었다. 24일의 당락은 다만 최악을 기록했을 뿐이다.
한가기 흥미있는 일은 「월· 스트리트」의 사문가도, 학자도, 「손·록펠러」의 공식성명도 모두 새태를 악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허드슨」강에는 몰막한 주주들의 자살시체가 둥둥 떠다닐 형편이었다.
최근 그 공황의 50주년을 맞으며 미국의 일각에선 공황재현의 불길한 예언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앉다. 세계대기업들의 무질서한 합병, 생산의 과잉, 석유값의 폭등등은 모두 어두움의 기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악관론자들도 많다. 1929년만해도 세계의 통신망은 낙후해 산업정보의교환이더디었다. 바로 그해 미국서남부의 설풍으로 통신이 두절되어 증권시장이 더욱 혼미했던 사실은 「아이로니컬」하다.
그리나 무엇보다 새로운 상황은 경제학의 목적이 옛날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앉게 깊고넓어진 사실이었다. 오늘의 세계경제에 관해 처방을할 학자나 정책가들은 많은 것이다. 「회색의 목요일」은 있어도 「암흑의 목요일」은 쉽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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