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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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화의 날」에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1년 중 어느 하루를 선택해 이를 「문화의 날」이라 경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면 어색하달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날을 기해 문화가치에 대한 향수와 애착을 한번쯤 더 재확인하고 넘어가는 것도 무의미하진 않을 듯 하다.
문화는 오직 인간의 세계에만 있는, 인간만의 특이한 성취물이다.
금수의 세계에 문화가 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그래서 인간이 인간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인의 「레벨」에서 뿐 아니라 한 민족의 단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문화적 성취몰이 견고하고 찬란할 수록 그 민족의 삶은 영원하고 굳건하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의 민족이 영속적 문화를 누린 적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 문화의 실적 견고성을 가름하는 것일까.
이것을 우리는 한마디로 세련된 문화감각 대지 문명감각이라 지적하고싶다.
세련된 문명감각은 이성적인 것을 숭앙하는 사고방식이요 풍조다.
역사상의 그 어떤 민족도 이 세련성을 상실할 때 문화를 잃었고 생활도 잃었다. 「스키타이」족이나 흉노족이 제아무리 한때의 영화를 누렸다 해도 문화적 세련성이 결여된 탓으로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한족은 그 문화적 세련성의 저력때문에 만주족이나 몽고족의 지배를 받고서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기응문화의 저력을 강화하고, 그것을 다시 가장 세련된 문명감각으로 정연해 나가는 것은 곧 그 민족의 영속적 생존 그 자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문화의 달이나 문화의 날을 맞아 생각해볼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세련성의 문제를 어떻게 과연 실천적으로 구현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우리 문화계엔 많은 행사와 축제가 만발하곤 한다. 이것은 물론 흐뭇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며 대견스런 일이다.
과거에 언제 이렇게 많은 민속예술이 발굴되고 재연되었던가를 생각할때 격세지감마저 느낄 정도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서 또 한가지 유의해야할 점은 우리국민의 「문화적 사고방식」 또는 「세련된 문명감각」을 키우고 훈련시키는 일이다.
문명감각의 훈련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시민적 명예의식에 바탕해 일체의 비문화적인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치심이 바로 그것이다.
수치심이야말로 모든 문화가치의 심리적 연원이요, 세련성의 출발이다.
태고의 어떤 선인들이 지혜의 과실을 따먹은 직후 대뜸 수치심부터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문화의 날을 맞아 우리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보다 뚜렷한 「부끄러움의 문화」를 체득시킬 필요성을 다같이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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