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國情院 ‘개혁 수술’에 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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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현대 국가의 총체적 정보 수집 역량은 세 가지 핵심 정보 능력으로 구성돼 있다. 인간 정보 능력(HUMINT), 통신정보능력(SIGINT), 그리고 영상정보능력(IMINT)이다.

종전 막바지에 있는 이라크 전쟁은 이 정보 요소들이 최첨단 무기체제와 통합돼 전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됐다. 그런 측면에서 이라크전은 정보전이기도 하다.

*** 정보수집 능력이 국가의 역량

지난 3월 28일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로써 일본의 대북 정보능력은 한 차원 더 높게 격상됐다.

세계 최고의 정보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대북 정보 수집에서도 약진을 하고 있는 일본. 이에 비해 우리의 정보 능력은 대북 정보 면에서조차 상대적으로 열세 상황으로 밀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현재 처한 상황이 적극적 정보 수집 프로그램의 추진을 어렵게 하는 불리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불리한 요소로서 대북 포용정책이 주는 정보적 제한성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불리한 측면은 정권교체에 따른 조직의 불안정성이다.

원래 정보 수집 활동은 위험을 수반한 모험적 활동이다. 정보활동은 노출시 상대국과의 관계 악화를 각오해야 하는 부작용을 안고 추진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통치자의 이해와 의지가 없으면 추진하기 어렵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반발이 우려되는 모든 활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따라서 적극적 정보 프로그램 추진이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5년간 국정원이 적발, 공개한 간첩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개혁은 단골 메뉴로 되풀이돼 왔다.

그때마다 국내정치 개입 방지와 대북 및 해외 정보 분야 강화라는 명분이 내세워졌다. 이번에도 같은 명분으로 국정원이 개혁 수술대 위에 놓이게 될 것 같다.

이는 불가피하게 조직의 불안정성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나친 쇄신, 서열파괴, 세대교체, 그리고 소위 '코드'에 초점이 맞춰진 개혁이 추진된다면 국정원의 전문성은 훼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기관의 전문성은 바로 직원의 전문성에 의해 결정되며, 유능한 정보 관리는 오랜 기간 경험의 축적을 통해 양성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수성과 전문성이 훼손되지 않는 점진적 개혁을 통해 국정원의 조직안정이 조속히 달성돼야 할 것이다. 훌륭한 정보 역량과 자산이 하루 아침에 구축될 수는 없다.

정교한 비밀 프로그램의 지속적이고 신중한 추진을 통해서만이 이를 달성할 수가 있다. 그 과정에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이해와 관심, 격려가 필수적이다.

정보기관은 기본적으로 국가안보와 관련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정보기관은 사실상 그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되며 발전을 기할 수가 없다.

북한의 정보에 관한 한 국정원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관계의 주도적 역할이 가능해지며 한.미.일 대북 공조체제에서 끌려다니는 입장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정부 무관심 속 위기의식 결여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원 탈정치화 의지 표명은 국정원을 전문 정보기관으로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일 게다.

이러한 盧대통령의 의지와 함께 이라크전에서의 미 정보기관의 활약상과 일본의 성공적 정보 위성의 발사가 우리의 정보 역량의 실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정권 출범 2개월 가까이 국정원 지휘부 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정부의 무관심과, 국가 정보 역량에 대한 위기의식 결여가 바로잡히게 되기를 바란다.

李炳浩(전 안기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