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대통령 말 한마디에도 전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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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력 분산, 즉 중앙과 지방 그리고 국회와 행정부 간의 제도적인 권력 나눔, 그리고 정당의 민주화로 대표되는 정치적 권력 나눔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이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 투박한 진솔함 이상의 것 필요

그러나 권력분산에는 함정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빚어내던 부패와 독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분산된 권력이 조정되지 못할 경우 무능과 혼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될 위험성이 있는데, 1920.30년대, 그리고 60년대 전세계적으로 목도했던 권위주의로의 회귀가 바로 과도한 원심력에 의해 민주체제가 붕괴한 경우들이었다.

따라서 권력이 분산될수록 분산된 권력을 조정할 구심점으로서의 대통령의 리더십은 더욱 중요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는 권위주의 정부에서처럼 언론을 장악하는 것도,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것도, 의원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구심적 리더십을 행사할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에서 나오는 정당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참을성 없는 대중의 지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이 때문에 민주화가 될수록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한 홍보전략은 더욱 중요해진다.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박한 정치적 선의나 진솔성, 그리고 올바른 정책적 선택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어떤 어젠다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며, 국민의 다수가 원하는 정책적 입장을 취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이끌고 가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노무현 정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권력의 분산을 수동적인 리더십 혹은 리더십의 제한으로, 민주적인 리더십을 대통령다움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그리고 홍보전략을 언론과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시작해도 되나요?'라고 묻는 대통령의 국회연설에서 드러나듯이 치밀한 시나리오가 없는 각종 대통령 참석 행사는 '위대한 대한민국'을 느끼고자 하는 국민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게 만들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정부가 몇 개의 언론사보다 약자임을 자처하는 데에는 국민으로서의 자괴심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민주사회일수록 더욱 국민의 자발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감동과 볼거리(spectacle)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대통령다움을 찾아가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 이후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은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아니라 KBS 사장의 임명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 행사와 관련된 논란이었던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어젠다의 설정에 대한 전략 없이 마구 쏟아내는 단어와 문장들은 대통령의 메시지를 실종시키고 있다.

전체 문맥은 생각하지 않고 실수와 부적절한 용어만 골라서 보도하는 언론에 서운해할 것이 아니다.

*** 국민이 감동할 볼거리 줘야

92년 대선에서 제3후보인 로스 페로가 추락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흑인교회에서의 연설에서 '당신네들(you peop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부터다.

언론은 그런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 언론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연설문에 사용하는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해 포커스 그룹을 두어 검토를 미리 거치고 또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반응을 미리 살펴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미국 정부의 브리핑 제도만 모방할 것이 아니라, 언론의 오보에 대한 사후적인 대응에 힘을 소진할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의 홍보팀들이 적대적인 언론들로 하여금 가장 대통령이 멋지게 보이는 그림과 문구가 보도되도록 하기 위해 물밑에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