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3주기 맞아 재평가집회|신문들 기일기사 없이 사진만 싣고 넘겨|전주시 유소기등 옛 정적들 서서히 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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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택동 사망 3주기(9일)를 갓 넘긴 13일 북경의 천안문광장에선 약3천명이 집결, 2시간동안의 모택동재평가 토론대회를 열고▲반신반인으로 숭상돼 온 모는「과오를 범하는 지도자이며▲문혁은 혼란과 경제후퇴를 가져왔고▲현 집권체제의 「4대 근대화」보다는 「정치의 민주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생전에 활불처럼 떠받들리던 「위대한 도사」모택동에 대해서는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었다.
중공당기관지 인민일보는 모의 3주기인 9일 모가 56년 서양의 장점을 배우자고 강조한 담화와 49년부터 64년에 이르는 기간의 모의사진 10장을 각각 1면과 4면에 실었지만 이날이 모의 기일이라는 사실은 한 줄도 비치지 않았다.
화국봉·등소평체제는 그들의 실용주의 노선이 모의 담화에서 보증을 받고있음을 과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진편집에서 강청(모의부인)의 득세로부터 시작하는 모의 만년을 깡그리 무시하고자하는 이율배반을 드러냈다.
그것은 아직도 모의 그림자가 중공에서 강력하게 드리워져있음을 암시하는 중좌라고 하겠다.
실제로 지난 1년간 화·등체제는 이런 한계마저 못마땅해하는 상반되는 좌우 두 세력의 공공연한 공격을 물리치면서 초대 중공당총서기 진독수를 비롯해 그 동안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으로 몰아세웠던 역대 지도자들과 사건을 사실그대로 재평가하는 작업을 적국 진행해왔다.
그 결과 3O년대 초에 쫓겨났던 나장룡이나 생사조차 불명했던 모의 세째부인 하자진이 갑자지 모습을 나타냈을뿐 아니라 반혁명분자로 쫓겨났던 수 많은 지도자들이 명예를 회복했다.
팽진갈이 살아있는 각계각층의 8백여명의 지도자들이 본래의 직책을 찾았거나 다른 보직을 받았다.
북경 팔보산의 혁명가 모소에서는 팽덕진같이 죽은 지도자들을 위해 심심찮게 성대한 추도식이 뒤늦게 베풀어지고 있다.
이 같은 재평가작업이 특히 모의 권위를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으면서 전국가주석 유소기의 복권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50여만건의 반혁명사건이 재번을 기다리는 가운데 유소기의 손발들인 팽진 육정일 등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복권되어 다시 오직을 맡았고 오함 등 사자는 죽어서 부활했다.
모와 그의 손발이었던 강생이 죽어서 매질을 당할 때 유소기의 처 왕광미가 사회과학원 부주임으로 모습을 나타냈고 그녀의 딸이 북경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진학했다는 소식이 이례적으로 보도된 것은 가장 극적인 사태발전이라 하겠다. 이것은 유소기의 복권이 임박했음을 암시한 것이다.
유소기가 죽어서 웃으면서 인민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의권위에 결정타를 먹이는 것 일뿐만 아니라 중공에서 모의 혁명노선이 점점 퇴색하고 유소기의 우경노선이 한층 전면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실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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