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김시습 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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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평전/심경호 지음, 돌베개, 2만8천원

생육신의 한 사람, 근대 이전 우리 지성인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이.

태어난 지 여덟달 만에 한자를 읽고 세 살에 시구를 짓는 등 천재로 이름을 날리다 세조의 왕위 찬탈 후 떠돌이 중으로 세상을 유랑했다는 김시습(1435~1493.사진). 그는 권력과 폐쇄성으로 꽉 조여진 조선 사회의 '환기통'같은 사람이었다.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는 4년여를 김시습에 매달린 끝에 이번 평전을 써냈다.

심교수는 책을 통해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시를 짓고 글을 썼던 문인으로서, 유가성리학과 정통 유가사관의 주제를 저술로 남긴 참여 지향의 선동가로서, 불교의 철학적 사유를 유교의 이상과 연결시키려 했던 철학자로서, 몸과 생명을 중시하여 수련 도교를 실천한 혁신적 사상가로서,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로서, 국토 산하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역사미를 발견했던 여행가로서" 김시습을 찾았으나 어느 하나도 그의 삶의 유일한 본질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김시습의 사상은 복잡하다. 인간의 왜소함을 자각하게 하는 불교 신앙, 왕도의 이상으로 현실을 변혁코자 하는 유가의 신조, 소박한 생활과 몸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도가사상 모두를 받아들여 자기만의 사상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그의 일생은 단순하기도 했다. 왕도정치가 구현되는 이상사회가 올 것이라 꿈꾸며 정치 역학 관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조율해본 적 없이 방랑과 은둔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자전적인 시 '동봉 여섯 노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북으로 말갈, 남으로 부상까지 노닐었다만/어느 곳에 수심 가득한 창자를 묻으랴." 죽을 때까지 그의 방황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나의 삶'이란 시에는 "나 죽은 뒤 내 무덤에 표할 적에/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준다면/나의 마음 잘 이해했다 할 것이니/품은 뜻을 천 년 뒤에 알아주리"라며 이상을 세우다 스러지고 말 자신의 삶을 예견하기도 했다.

이처럼 심교수는 2천여 수가 넘는 매월당의 시를 통해 그의 일생과 생각을 정리했다. 천재성과 광기의 인물로 포장돼 오히려 다가가기 힘들었던 매월당을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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