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나|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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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방후 한국의 종교는 괄목할 성장을 거듭했다.
일제하 민족수난기에 각 종교가 정상적인 발전을 기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종교인 신도와 일본불교의 대거진출,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탄압여파로 한국의 종교세력은 미미했다.
해방직전 일인이 만든 45년판 『조선연감』(경성일보)에 의하면 당시 종교로 취급된 것은 신도·불교·기독교등 셋 뿐으로 한국인 신도수는 신도가 2만, 일본불교 4만, 한국불교 24만, 기독교 37만명이었다. 그밖에 유림 2백만과 이른바「유사종교」교도들이 약간이었다.
한편 「그레브단제브」의 『한국현대사론』은 당시 한국의 최대 종교집단인 불교조차도 사찰1천4백1개소, 신도 19만4천6백명일뿐이며 일본불교를 믿는 한국인이 1만5천3백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는 50만1천명의 신자에 5천성직자, 5천3백교회를 갖고 있어 일제하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이미 「시베리아」와 「필리핀」을 제의하면 동양에서 인구비례로 볼 때 가장 많은 기독교신자수를 확보했다고 지적되었다.
그밖의 종교는 천도교가 8만, 기타2만이었다.
이같은 통계수치에 문제가 있겠으나 『조선연감』을 기준으로 할때 34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각종교는 남한만으로도 비약적발전울 했음을 알수있다.
신자수에서 불교는 약47배가 늘어난 1천3백14만명, 「가톨릭」이 6배가 늘어난 1백14만명, 개신교가 26배 성장한 5백29만명, 천도교는 10배 성장한 82만명, 원불교는 14배 증가한 81만명이다(문공부자료 78년말기준).
이같은 종교인구의 양적팽창이외에 이기간의 중요특징은 다음과같이 요약될 수있다.
①교단 분열(개신교만하더라도 65개교단, 불교 18개종단) ②종교의 비속화(재산을 둘러싼 분쟁·사기·무속적 기복신앙) ③군소신흥종교의 발호 (군소신흥증교집단이 무수하게 명멸) ④대신흥종교의활동 (통일교의 국제적진출및 개신교측과의 분규, 원불교의 꾸준한 성장) ⑥신학적정립노력 (현대신학유입, 사회학운동) 등이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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