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제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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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29일에 작고한 「마르쿠제」는 흔히 난해한 철학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철학자 가운데그의 이름만큼 널리 알려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
1960년 「로마」 에서 이른바「뉴·레프트」대학생들이 내흔든 깃발가운데 「3M」 을 새긴 「슬로건」이 있었다. 「마르크스」·「마르쿠제」· 모택동의「이니셜」이다.
혼돈과 모순의 시대로 불리는 60년대에 「파리」의 중심가에서 주먹을 휘두른 학생들도,「뉴욕」의 「컬럼비아」대학을 점거했던 학생들도, 서「베를린」에서 경찰에게 돌팔매질을 했던 학생들도 모두 이 백발의 철학자 이름을 외쳤었다.
「마르크스」의「예언」을 칼로써 실천하려던 자가 모택동이었다면 그 「예언」 을 현대사회의 새로운정세에 비추어 적절하게 해석한자가「마르쿠제」였던것 같다.
그러나 정작 소련의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 는 그를 가리켜 『반동사회학자』 라고 신랄하게 규탄했었다. 「마르크시즘」의 뼈를 추려내 비공산화하고, 진보세력율 분열시켜 자본주의를 돕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수지식인의 대변자격인「프랑스」 의 「레이몽·아룽」 교수는「마르쿠제」를 낭만적인「마르크시즘」 해설가라고 비판했다. 남 「캘리포니아」 의 우익과격파들은 그가「캘리포니아」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를 죽인다는 위협까지 했었다. 그무렵 「샌디애이고」 대학생들은 경호단을 조직, 그를 밤낮으로 호위한, 웃지 못할 희극적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이 파괴적· 병적 내지는 이해불능이라 해서 냉대했던 60년대 구미대학생들의 반항에대해 그 「이론적 이유」 를 재시했다는 뜻에서 「마르쿠제」는 본인이 원컨,원치 않건간에 반항세대의 정신적인 대부였다.
「마르쿠제」는 또 20세기중엽에 접어든 미국의 산업기술문명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공교릅게도 청년층과 대학지식층에 커다란 반응을 자아낸 것이다.
『나는 현대의 사회는 모든 면에서 억압되어있는 사회이며, 안학·번영, 또는 정치적·도덕적인자유마저도 억압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해방」시키기위해 언제나 사회속엔 대립이 존재할 필요가있다고 갈파했다. 그는 계속해 말한다.
『…그것은 간단히 제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고 보다 중요한것은 완전히 인간을 바꾸는일, 그의태도·본능·목적·가치를 완전히 바꾸는 길밖에 없다.』「베를린」 에서 태어나 「나치스」에 쫓겨 벌써 1934년에 미국에 이주. 「컬럼비아」· 「하버든」· 「캘리포니아」·「버클리」 대학등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이성과 혁명』 『에로스적문명』 『 1 차원적인간』 『소비에트· 마르크시즘』등은 특히 역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 시대의 문명에 새 바람과「에너지」를 불어넣으려던 그의 철학자다운 노력은 오래 기억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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