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저작권법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에 상정되리란 소문이 유포되고부터 출판계에는 그 찬반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것 같다.
찬성하는 측의 의견을 들어보면, 1957년에 일본의 명치저작구법을 모방해 제정된 현행법은 여러모로 현실에 맞지 않는 점이 많아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법 2조의 저작물의 개념문제, 4·5·6조의 저작권자문제, 42·43조의 저작권 변동 문제 및 64조의 권리침해 문제 등 몇몇 사항의 법조문은 너무나 모호해서 많은 혼선과 불합리점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 가운데 몇가지 사항만은 우리나라 출판계의 현황에 비추어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는 여론이 넓게 공감을 얻고 있음을 주목해야 하겠다.
가령 개정안 가운데 외국 저작물의 국내출판 규제조항(78조)과 출판권의 사전 설정 및 등록(67.77조)에 관한 조항이 바로 그런 것인데 개정을 서두르는 측에서도 이에 관한 여론만은 십분 참작해야할 것이다.
외국 저작물을 번역출판할 경우 원작자의 사전허락을 받고 사후에 반드시 적절한 인세를 지불해야한다는 것은 물론 국제적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만약 한국 출판계에 그런 국제상식을 갑자기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 인지는 너무나 뻔하다.
한국 출판계가 1년 동안 출간하는 서적은 대략 1만5천권쯤 된다고 하는데 그 중의 70%가 번역물이라 한다. 그리고 외형상 국내출판으로 되어있는 각종 기술관계·어학관계 서적들도 실제로는 일본등 외국 출판물을 번안한 경우가 절대다수라 한다. 이런 출판물들은 그동안 한국독자들에게 세계의 문학을 흡수 할 수 있는 창문 구실을 해온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고, 그것들은 곧 오늘의 한국의 발전을 가져오게한 기술자들을 길러낸 교재역할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만약 「사전허락」과 「인세지불」을 일시에 의무화한다면 영세한 한국의 출판사치고 외국번역물 한권인들 제대로 출판할 회사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이러한 암담한 사태는 바로 한국 독자들의 세계문학 실조증으로 이어질 것이고, 우리의 문학적 발전과제에도 심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출판권의 사전설정이라는 것도 일종의 사전검열과도 갈은 인상을 주는것으로 이것이 출판사업에 미칠 심리적, 실제적 위급효과는 심대할 것이다.
글에 대한 평가, 특히 문학작품의 어법과 내용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것이라서, 『괜찮다』는 판단하에 제작한 책자가 출판권 선정시에 갑자기 불허로 판정이 날 경우 그 손해와 낭비는 막대한 것이다.
때문에 현행 저작권법의 낡은 조문들을 하루속히 현실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할지라도 이상의 두가지 사항에 관해서만은 보다 신증한 판단이 있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