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모임 창악회 <회장 김용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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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 창작음악가들의 모임 중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나름대로의 착실한 발전을 해온 것이 창악회(회장 김용진).
58년 이성재교수(서울음대)를 중심으로 정회갑(서울음대) 김달성(단국대) 최춘근(영등포여중 교감) 이치완씨 등 서울음대작곡과 출신의 의욕적인 30대 젊은이 5명이 뭇을 모아 만든 단체다.
창작음악의 황무지였던 한국에 새로운 음악창작과 그 이론 연구를 통해서 민족음악 수립에 이바지하자는 큰 뜻을 품고 출발했다.
몇 차례의 예비모임과 발기인회를 거쳐 창악회가 첫 창립 총회를 가진 것은 58년 4월D일. 그때의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교수회관 도서실에서였는데 이계재씨가 대표위원으로 뽑혀 이후 10여 년이 넘게 회장직을 맡았다. 그 뒤를 이어 이남말씨 (서울음대) 가 회장직을 맡았고 78년에는 다시 김용진씨(서울음대)가 새로운 회장으로 뽑혔다.
58년 5월에 제1회 연구발표회를 갖고 7월 제1회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그후 창악회는 상당수의 의원들이 외국유학을 떠났고 또 창작활동에 대한 일반의 인식부족으로 활동이 부진, 69년까지 4, 5회의 작곡발표회와 「세미나」를 갖는 정도에 그쳤다.
『창악회의 활동이 봄과 가을 1년에 2번씩 정기 신작발표회를 갖게되는 등으로 본격적이 궤도에 오른 것은 70년대부터입니다. 그때쯤엔 외국에나 갔던 회원들도 속속 돌아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특히 76년부터는 박은회씨를 회장으로 한 후원회가 생겼고 78년부터는 한국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보조로 작품발표회를 더욱 용이해졌다는 김회장의 설명이다.
연륜을 쌓으면서 서울음대 작곡가 출신으로 국한되었던 회원들도 70년대부터는 국내외 각 음악대학 출신으로 확대되어 오늘에는 역량있는 중견 및 신인 작곡가 30여 명을 포함하고 있다.
창단 「멤버」를 중심으로 김정길 성두영 이영자 박중후 백병간 서우석 최인독 이상근 허방자 윤해중씨 등. 특히 백병동 김정길 오숙자씨 등은 창악회 신작 작곡 발표회를 통해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로 꼽히고 있다.
70년대에 들어와서는 매년 2회의 경기 신작발표회를 거쳐 14∼15편의 신작을, 지난 20여 년간 20여 회의 작곡발표회를 거쳐 창악회는 총 1백여 편이 넘는 신작들을 발표했다.
73년과 75년에는 현대곡으로는 처음으로 회원작품집인 2권의 악보집을 발간했다. 77년과 78년에는 회원들의 작품을 담은 3장의 음반을 냈다. 현재 화원들의 4번째 작품집 「디스크」가 녹음되어 8월초 발간될 예정으로 있다.
『여러 가지 사업 중 저희회원들이 가장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 78년 창악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재정, 매년 실시하는 작곡「콩쿠르」입니다. 작곡을 공부하는 후진들에게 널리 문호를 개방하여 작품을 만들 의욕을 주고 발포의 기회를 마련하여 주자는 의도에서 마련했습니다. 』
현대음악이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실험과 서양것에의 모방과 방향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서양기법을 활용하여 한국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으로 창악회는 그 뚜렷한 성격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고 김회장은 밝힌다.【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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