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를 비판한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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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신문사에 날아든 편지 한통…. 원래는 붓글씨로 쓴 것이었으나 복사기로 부본을 만들어 보낸 것이었다.
형식은 여하간, 편지의 내용은 생각할 만한 뼈대를 담고 있었다, 편지의 서두는 『대당실색·가괴·가탄·몰렴치·무운 진한심쟁』라는 강력한 표현을 모조리 동원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글쓴이를「한심스럽다」고 느끼게 했는가고 내용을 읽어보니 얼마전에 모학회주최로 조선중기의 한 학자요 정치인을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에 대한 비판이었다.
글쓴이는 3백년 전에 살던 그 인물을 과소평가 한다든가, 흠을 찾고 비난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는『대학자요 대정치인이었던 그 분을 어느 누가 모르겠는가. 3백년간이나 추앙되고 연구원 마당에 새삼 무슨 발굴이냐』면서 종문과 학자들과 신문들을 규탄했다.
그가 불만스러워 하는 것은 탁문세가들이「재허가」다, 「신발굴」이다하면서 그들의 조상을 갑자기 들고 나와서, 혹은 역사를 왜곡하며 혹은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기르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①대가의 업속을 새삼스럽게 내세우기보다는 당세 권력 앞에 유린되어 빛을 못 본 사람들의 업적을 밝혀야 하며 ②재주로, 학문으로, 인품으로, 권력으로 남을 유린한 사람은 흠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취할 만한 점이 많은 주장이었다. 그러나 편지의 발신자는 익명이었다. 봉함엔「이조당쟁사 연구회」라는 단체가 발신인을 대신해서 적혀있었으나 그 단체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주소나 전화번호도 없었으며 알만한 학자들도 그런 단체는 못 들어 봤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주장을 담은 편지를 기사와 할 수 없었다.
사회에 보탬이 될 좋은 생각을 왜 떳떳하게 발표하고 나서지 못하는지 좀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 그의 용기 없음을 탓하기에 앞서 그와 같은 주장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더 큰 문젯거리가 아닐까 반성도 된다. 이견에 대한 토론의 훈련이 재대로 안되고 감점과 행동이 앞서는 예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종원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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