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해진 세계경제…조기회복 난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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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라크 전쟁의 사실상 종전 소식에도 불구, 주요 증시의 주가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는 등 국제 금융 및 원자재 시장이 전황과는 따로 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전후 세계 경제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세계 경제가 튼실했던 걸프전 당시와 현재의 전황을 견주어서 금융시장의 장기 랠리 등을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경제학자들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을 제외하면 이라크전쟁 이후 세계경제가 ▶북한 핵문제 등 또 다른 지정학적 문제와▶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괴질의 여파 등 첩첩이 쌓인 악재들로 조기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전황과 따로 노는 시장=이번주 들어 계속되는 연합군의 승전보에도 미국과 유럽 증시는 계속 약세를 보였다. 한동안 안정세를 보였던 유가와 금값도 승전소식에 아랑곳 없이 오름세로 돌아섰고, 개전 이후 강세였던 달러값도 최근 다시 하락세로 밀리고 있다.

특히 미국 증시의 주가는 최근 며칠의 약세로 개전 이후 상승폭을 거의 까먹었다. 걸프전 당시에는 개전 이후 종전까지 6주 동안 다우지수가 15%가량 급등했었다.

◆걸프전 때와는 다른 경제상황=동맹국이 이라크전에서 사실상 승리를 이뤄낸 것은 불과 3주만의 일이다. 당초 단기전을 점치던 전문가들도 4주 정도를 예상했었다. 종전까지 6주 걸렸던 걸프전에 비해선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상승율은 걸프전에 비해 턱없이 짧은 실정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세계 경제의 체질이 걸프전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걸프전 이전에는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미국 경제가 비교적 튼실했지만 이번에는 미국 경제가 이라크전 이전부터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를 낳을 만큼 취약한 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전후 세계 경기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미국을 대신해서 세계 경제를 끌어가야 할 유럽과 일본 경제도 모두 장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이라크전은 종막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중동지역의 반미감정과 북핵 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불안감도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투자자들의 자금이 금(金)같은 보다 안전한 상품으로 계속 흘러들고 있다.

점점 우세해지는 전후 경제 비관론=국제통화기금(IMF)은 9일 발표한 세계경제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올해 이라크 전쟁의 영향으로 당초 예상됐던 3.2%보다 부진한 3%의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아시아 주요국들의 경우 괴질로 인해 경기침체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IMF의 수석연구원인 케네스 로고프는 "이라크전이 빨리 끝난다고 해도 세계 경제는 미국의 주택경기 거품 붕괴 위험 등 다른 위험 요소들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라크전이 장기적으로는 각국의 재정적자를 키우고 장기금리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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