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은색투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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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니벨롱겐」의 반지』라면「바그너」의 대표적「오페라」가운데 하나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지그프리트」가 쓰던 은색투구는「바그너」와 함께 독일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으로「바이
로이트」축제 1백주년을 맞아 동남아순회전시회중에 지난 1일부터는 주한독일문화원에서 전시되
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은색투구가 지난 5일 돌연 증발해버렸다.
근래에 이르러 미술품이나 골동품에대한 관심이 이상할정도로 높아지면서 국전입상작품도난사
건, 신안해저유물 도굴사건, 신라금장위조사건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번의 은
색투구도난사건이 그와 비슷한 사건이건 아니건간에 이 사건은 우리에게 두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그것이 남의 나라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한국미술5천년
전」에서 그같은 도난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미국, 혹은 미국국민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품게 될것인가. 그럴 경우 우리가 갖게 되는 감정은 은색투구의 도난으로 해서 서독국민
이 갖게 되는 감정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둘째는 그러한 감정이 다소 비약했을 때 정치적 의미
에서 주름살을 가져올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느끼는 일이지만 몇 개의 정치적인 사건으로
해서 서독의 대한관이 벼로 좋지 않았었는데 그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단순한 독일문화유
산의 도난사건이상의 불상사일 수 있다.
한편 가져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금전으로환산할 가치로 보든,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소장가치로 보든 우리로서는 별다른 효용가치가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의 것은 그들이 간직
함으로써 가치가 있는 법이고 우리의 것은 우리가 보존함으로써 가치가 있는 법이다. 마땅히 주
인에게 돌려져서 예정된 전시를 끝내고 보관되던「바그너」의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게 되길 바란
다. <정규웅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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