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하의 유통질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상품의 유통구조는 원래 그 지역사회의 생활양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어 발전되는 것이 상례다.
물산이 풍성하고 수요를 따라 지역간 이동이 활발하면 저절로 그에 걸맞는 시장의 규모와 형태가
자생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우리의 경우 굳이 이 유통부문이 말썽이 되고 경제순환의 애로를 형성하게 된 소이는 생산구조
나 소비양식의 변화가 너무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비해 이부문 종사자나 정부의 인식이 채
못따르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전통적으로 상업·유통부문의 보수성이 강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뿌리깊은
「인플레」에서 비롯된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한 사회의 유통현실은 그
사회의 안정성에 바로 연결된다고 보아 틀림없는 것이다.
경제가 안정되지 않고 「인플레」의 기대감이 언제나 충만해 있는 사회의 유통구조는 항상 정
상이윤보다는 초과이윤에, 적정「마진」보다는 폭리에 편향하기 마련이며 매점 매석이나 가격조
작등 갖가지 비정상거래가 일반화되는 것이다.
이런 계제가 되면 유통구조가 아무리 현대화되고 행정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문란한 유통질서를
바로잡기는 어렵게 된다.
정부의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도 이런 유통기반의 안정노력과 병행될 때 비로소 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유통기반의 안정은 일차적으로 물가체계의 안정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므로 빈번한 가격체계의
변동이나 물가행정의 변경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 되도록 시장경제의 원리를 존중하고 확충
해 가는 것이 유통안정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런 기반이 갖추어지면 자연 남은 문제는 유통구조 자체의 합리적인 개편이 될 거이다.
유통구조에 관련된 문제로는 우선 복잡한 유통단계를 줄일 여지를 찾고 시장을 보다 소비자에
유리하게 재구성하는 일이 된다.
이번 5개년계획의 골격을 이루는 대규모도매「센터」설치 구상은 이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노
린 매우 과감한 구상이기는 하나 기존 유통질서에 큰 변혁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면밀한 준
비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이 새로운 시장조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실익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방대한
투자가 필요한 도매시장을 정부가 전액 투자하지 못할 경우 민자유치가 불가피한데 이를 어떤 방
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실효가 달라질 수 있다.
또 입지여하에 따라서는 생산자·소비자에 모두 불리해지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기초 생필품이나 농수산물의 보다 용이한 접근이다. 특히 농
수산물의 경우는 복잡하고 다양한 유통구조 때문에 언제나 소비자들이 곤욕을 당하는 부분이므로
공산품 보다 더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
농수산물은 무엇보다도 농협이라는 훌륭한 기존조직을 활용하는 일이 급선무이므로 계통출하
「루트」를 폭넓게 확충하여 생산·소비자의 공익에 기여할 수 있게 다양한 방안과 투자가 이루
어져야 할 것이다.
유통근대화 연차계획은 물론 자본투하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조세나 금융에서 신축성있게 선
별지원하고 행정으로 지도하는 종합적인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