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좌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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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승을 한자로는「노장」이라고도 한다. 스승과 자기의 자리사이를 일장의 간격으로 떼어 놓는다는 뜻이다. 일장이라면 10자(척)정도의 거리다.
사부라는 말도 있다. 스승의 존칭이 이처럼「태사」와 동급으로 쓰이는 것은 가히 그 존엄도를 짐작할 수 있다. 태사라면 임금을 보좌하는 대관이다.
옛말에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직능에 대한 존경보다는 그 인격에 대한 경외의 표시일 것이다.
영어로도 국민학교 교장을「프린시펄」이라고 한다. 왕자(프린스)나 제후의 명칭에서 비롯된 말. 실제로「프린시펄」은「가장 중요한」「으뜸가는」…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교장을 바로 이처럼「프린시펄」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 같다. 은연중에 붙여진 존대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시속은 바뀌어 오늘의 교사나 교장들이 과연 사회의 존경을 받고 있는지는 새삼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언젠가 한교사의 수기를 읽고 고소를 금치 못한 일이 있었다. 학부모를 불러 무엇을 의논하려고 해도 십중팔구는 그 의도에 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흰봉투」나 가져오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학교를 다녀온 어머니에게『돈 얼마 갖다 주었어?』라고 묻는 아이도 있다고 그 교사는 한탄하고 있다. 이쯤되면 웃을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누구를 탓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교사만 나무랄수 없고 그렇다고 무분별한 학부모만 나무랄수도 없을 것이다. 아마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며, 우리사회의 풍조를 탓해야 할 것도 같다.
이런 교육의 풍토와 사회의 풍조가 바로 오늘의 교장을 공식석상의 말석으로 밀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의 풍조가운데는 행정우선의 사고방식탓도 적지 않을 것같다. 「…보다 높다」는 사회적 지위의 척도는 다만 권력의 크기로 가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까짓 권력도 없고 어린이들이나 가르치는 교장은 어느모로도 돋보일 리가 없다.
세태의 눈길은 또한「배경」에도 민감해 때로는 필요이상의 예우를 받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모든 가치척도가 도덕적인 기반을 잃고 있는데에있다.
「프랑스」의 시골에선 응당 교장은 읍장열로 대우받고 있다. 교장은 그 읍의 유일한(?) 지성인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런 사람을 한결같이 존중해온 도덕적 가치관의 온존에서도 그 전통을 찾을 수 있다.
요즘 대통령마저도 개탄해 마지않는 교장의 사회적 예우문제는 우리의「모럴」회복을 위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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