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내부는 철근콘크리트 골조였다-해체 공사 중 밝혀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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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적32호인 독립문(서울 교북동)의 내부가 단단한 철근「콘크리트」로 돼있음이 23일 밝혀져 건축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l898년에 세워진 독립문은 지금까지 깎아 만든 화강암 덩이로만 쌓아올린 것으로 추정돼왔으나 해체복원을 위해 윗 부분인 탑석을 들어내는 순간 내부구조물이 뜻밖에도 철근「콘크리트」구조물로 나타났다.
건축학자들은 우리나라에 철근「콘크리트」공법이 처음 도입된 것을 7910년으로 보아왔으나 이보다 12년이나 앞서 세워진 독립문의 내부구조가 철근「콘크리트」로 된 것은 한국건축사를 수정해야할 획기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립문의 내부 골격을 보면 직경 10㎜짜리 원형 철근을 10㎝ 간격으로 가로·세로로 엮은 뒤 「시멘트」와 모래·자갈을 섞어 「콘크리트」했으며 밖으로 화강암을 석회로 붙였다.
이 철근은 요즘 사용되는 것과 같은 우툴두툴한 이형 철근이 아닌 매끈한 원형철근으로 건축용으로는 가장 가느다란 것이다.
이같은 철근「콘크리트」구조물은 외벽뿐 아니라 내벽 안 쪽에도 되어있어 모든 벽면을 안전하게 받치고 있다.
해체 작업 현장을 둘러본 성균관대 윤일주 교수(건축학)는 독립문이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 만든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 당시의 설계도 등이 없어 내부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몰랐으나 그 당시에 철근을 사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만약 독립문을 처음 세울 때부터 철근을 사용했다면 일본이 1903년 비파호 교량 건설이나 1906년 동경 창고 주식회사의 창고건설에 최초로 철근을 사용했다는 기록보다 5∼8년이나 앞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1928년 10월에 발간된 『조선과 건축』이란 잡지에 독립문의 기초가, 튼튼치 않아 이해에 조선 총독부가 4천원의 예산을 들여 경성부(서울시)에 위탁,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 돌벽 내부에 철근「콘크리트」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 경우전면 해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한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해체 작업을 전두 지휘하고 있는 서울 지방문화제 전문의원 김동현씨는 독립문의 건립 목적이나 건립 연대 등은 기록에 남아 있으나 건립에 쓴 재료·그 후의 보수 등은 기록이 재대로 안돼 있어 철근「콘크리트」를 건립당시 사용했는지 보수과정에서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독립문은 1896년 2월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사신을 맞던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을 헌 뒤 그 자리에 서재필 박사 등 애국지사와 국민헌금 3천8백52원으로 그해11월21일 착공, l년1개월만인 l898년 l월 중순 준공됐었으나 성산대로 건설로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70m 떨어진 곳으로 옮겨지기 위해 준공 81년 3개월만인 지난달 18일 해체 작업에 들어갔었다.
건립당시 설계는 서박사가 「파리」의 개선문을 본떠 독일공사관의 「스위스」기사에게 맡겨 완성했으며 공역은 한국인 심선경 목수에게 맡겼었다. <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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