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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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당대회를 앞둔 신민당의 당권경쟁 양상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쟁점 선명치 않은 반증>
아마도 내 나이 여든 일곱으로 이번 대회가 내 생애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대회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더욱 감회가 깊은지 모르겠다.
해공·집석·운석 등 많은 선배지도자들을 접해본 나로서 신민당의 전당대회를 맞을 때마다 그분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감상에 젖어서 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정치하기가 어렵고 특히 야당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시대의 무상이랄까, 정치의 변천이랄까를 느끼곤 한다.
이번 대회에 자그마치 7, 8명의 당수후보들이 나서고있다니 그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과거 집석 조병옥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구파와 운석 장면박사를 추대하던 신파간의 대결은 우선 상대가 뚜렷하고 쟁점이 분명했다.
그 뒤로도 당권경쟁은 많아야 삼, 사파전이었는데 이번에 많은 후보가 난립했다는 것은 무언가 쟁점이 선명치 않은 반증일 수도 있겠고 어찌 보면 당원들의 「집약된」 존경을 받는 인물난의 현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으로는 이승철대표의 중도통합론에 대한 찬반론이 있긴 했으나 어떤 정책상의 상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내 감각으로는 모두 방법론의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열띤 공방 끝에 종국에 가서는 표로써 승패를 가름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은 이번에도 지켜질 것으로 믿는다. 더러 보도되기로는 이승철·김영삼씨간에 양극을 형성해서 파국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으나 나는 그렇게 보지도 않고 또 그래서는 안된다고 믿고있다.
이런 세인의 노파심을 없애기 위해서 당권경쟁에 나서는 사람들이 「파인·플레이」를 하고 어떤 경우에라도 표결에 승복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어떨까.
지난 76년의 이른바 각목대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의 신민당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돈써 이기면 언어도단>
그러므로 경쟁에 나서는 사람이나 그들을 밀어주는 참모들은「하늘을 보고 부끄러움 없는」 정정당당한 자세로 임해줄 것을 바란다.
자칫 과열하다 보면 이성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과열이 더 큰 과열을 낳고, 이렇게 해서 감정대립으로 치닫는다면 국민의 지탄을 면할 길이 없다.
야당의 전당대회는「멋」있는 민주주의의 표본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과열하다가도 냉정을 찾아서 당내 평화와 전진을 기약하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게되고 그것이 수권태세를 갖추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야당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하는 소이 또한 수권정당의 자세에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과는 다른 측면이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야당의 당수가 되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하고있는 동지나 후배들이 많다는 것은 야당에만 있을 수 있는 긍정적 일면이다.
그러나 당권만을 위한 경쟁이나 계파의 확장 등을 겨냥한 불순한 동기가 티끌만큼이라도 있어서 축제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에 오점이나 찍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혹시라도 인격이나 정견을 통한 당권장악이 아니라 돈 써서 이겨보겠다는 일이 있어서도 언어도단이다.
대회에 임하는 대의원들은 이번 대회를 단순한 당수선출의 당내행사로만 생각하지 말고 국민의사를 집약하고 승화시킬 수 있는 차원 높은 축제가 되도록 옷깃을 여며야 한다. 오늘과 같이 복잡한 국제정세하에서 신민당이 어떻게 그 진로를 택해야 할 것인가는 실로 대회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패자승복의 전례 상기>
현실을 무시한 야당도 존립하기 어렵지만 현실을 지나게 의식하여 현실에 안주하다보면 야당이 존립하는 그 의의자체를 상실하게 되어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나가야 할지 현명한 판단을 해야할 때라 끝으로 대회에서 어떤 것을 가져오든지 야당의 힘에 보탬이 되는 대회를 진행해야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날 단3표 차로 장면박사가 조병옥 박사에게 졌지만 이에 승복하고 당의 결속을 과시했던 전례를 귀감 삼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상철 신민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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