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을 유엔에 산 "유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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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엔」의 역할은 문제의 날카로운 해결보다도조용한 접근이 필요하며 사무총장은 하나의 중재자일뿐』-.
71년12월 21일 「우·탄트」3대총장후임인선을놓고 난항을 거듭하던「유엔」안보리에서 4번째「유엔」 사무총장에 지명됐던「쿠르트·발트하임」박사(61)는 당시 피선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때 동료외교관들도 그의 성격이 지성적이거나 날카롭지않기때문에 가장 적임일 것이라고평가했듯이 「발트하임」은 72년1월1일 집무를 시작한뒤 76년 5대총장으로 재선, 8년째 사무총장을 맡아 「유엔」자체가 안고있는 벽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날카롭지않게」「유엔」을 이끌어왔다.
1918년「오스트리아」「빈」교외에서 공무원의아들로 태어난 그는「빈」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 법학박사학위를 딴뒤 45년외교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51∼55년(업저버), 64∼68년, 69∼71년 (주「유엔」「오스트리아」대사)등 사무총장이 되기전에도 통산 10년을 「유엔」에서일한 「유엔」통 직업외교관. 2차대전후 「파리」 「런던」 「모스크바」를 넘나들며 「파리」강화조약협상을 「리드」했으며 주「캐나다」대사, 외상의 자리에도 올랐었다. 특히 70년에는 보수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대통령선거에출마, 「프란츠·요나스」에게 패배했으나 47%의 지지를 모으기도했다.
72년5월 월남전에 대해 안보리가 행동을 취해야한다고촉구, 중공을 분노케했고 그해 7월에는 미군기가 월맹을 폭격했다고 말해 미국의 분노를 사는등 강직한 정의파로 자주 강대국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하는 일면도 있다.
6「피트」가넘는 체구에 검은 양복·양말·구두, 빨간「넥타이」를좋아하는 그는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어른이돼서도 틈만나면 만화를 즐겨본다.
영어와 불어를 모국어(독어)이상으로 구사하며 78년에 미국「아버지의날위원희」가 선정한「78년의 아버지」로 뽑히는등 매우 가정적이기도 하다.
같은 법학박사인 부인「엘리자베트」여사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있고 한미국인 갑부가 기증한「뉴욕」에 있는 1백10만「달러」짜리 「유엔」 사무총장관저에 살고 있다. <주원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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