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철권통치의 상징 '먼지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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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담 후세인이 무너졌다. 그의 생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철권통치를 상징해온 대형 동상이 먼저 쓰러진 것이다. 동상의 철거는 바그다드 함락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라크 전역에 있는 수많은 동상 중에서도 이날 철거된 동상은 '대표 동상'이었다. 크기도 하거니와 서울시청 앞 광장 같은 알피르두스 광장에 서있었다. 후세인은 한 손을 높이 들어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그다드가 시민 봉기에 휩쓸린 9일 오후. 시민들은 동상 주변에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밧줄을 목에 걸고 잡아당겨 동상을 무너뜨리려 했으나 철심으로 고정된 동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도끼로 동상 받침대를 찍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미해병이 지원에 나섰다. 강력한 구동력을 가진 탱크 견인용 M88 차량이 동상에 다가갔다. M88 견인차량의 크레인에 로프가 연결됐다.

로프를 걸면서 미해병은 정복의 상징처럼 동상의 얼굴에 성조기를 잠시 씌웠다가 곧 이라크기로 바꿔 걸었다.

육중한 차량이 서서히 움직였다. 로프가 팽팽해지고 동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받침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동상은 앞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동상은 바로 쓰러졌으나 발은 탑위에 걸쳐 있었다. 굵은 철근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량이 다시 움직이자 동상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군중은 환호하며 동상에 몰려가 마구 짓밟았다.

세계인은 이 광경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부다비 TV가 생중계한 것을 CNN 등이 전송했다.

후세인은 1998년께부터 동상과 초상화를 전국에 세우기 시작했다. 이날 무너진 동상은 사복 차림의 후세인을 6m 높이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동상은 만수르지구 대공원에 세워진 동상(높이 10m)보다는 작지만 ▶바그다드시 한가운데에 있고 ▶지난해 후세인의 65회 생일(4월 28일)을 기념해 세워졌다는 의미가 있다.

강찬호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중심지인 알피르두스 광장에 서 있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대형 동상이 시민들이 건 밧줄을 미군 구난용 탱크가 당기면서 무너지고 있다. [TV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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