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행23자의 사면비일가능성"|고구려비 판독에 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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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기백<서강대교수·국문학><1>
이번 중원 고구려비에서 얻어질 새로운 지식은 한국고대사의 연구에 이바지할 공헌이 지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고대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흥분하게 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비문을 판독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다행히 이 비를 발견하고 조사한분들이 여러 고대사 전공자들과 함께 재조사할 기회를 가진다고 하므로, 이 재조자에 큰 기대를 걸어 두고자 한다.
이에 대비하여 생각나는 몇가지 점을 적어서 참고로 제시할까 한다.

<2>
우선 밝혀야할 가장 큰 문제는 비문이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며, 문장의 총수가 얼마나 되는가하는 것이다. 현재 조사된 두면을 보면, 비록 광개토왕릉비와 같이 행간에 선을 긋지는 않았으나, 종횡으로 문자가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런데 좁은 면 맨 끝줄 밑에 6자가 비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비문이 여기서 끝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조사된 넓은 면은 「오월」로서 문장이 시작되고 있다.
비문이 이렇게 시작될 까닭이 없으므로, 여기가 비문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은 곧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비문은 그 앞에 더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문이 비의 좁은 면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 문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넓은 면이 이 비의 제1면이 되어야 한다는 추측이 나온다.
아마도 이비는 광개토왕릉비와 마찬가지로 사면비일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 조사된 면은 비의 제3면과 제4면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 문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두면, 즉 비의 제1면과 제2면의 조사는, 가장 큰 관심사가 되지 않을수 없다.

<3>
현재 조사된 비문은 그 한행을 대개 25자내지 26자로 보고들 있다. 즉 넓은면 제1행의「오월」이란 글자위에 2자내지 3자가 더 있다고들 한다.
워낙 거친 화강암에 새겨진 마멸이 심한 비문이어서 판독도 엇갈리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1행의 문자수를 확인 하는 작업도 재조사에서 큰 관심사가 되어야할 것이다.
필자의 현재 판단으로는 「오월」위에는 다른 문자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조사된 좁은 면의 제5행 밑부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동이매금」이 나온다. (「매」는「매」로 되어 있는 듯 싶다). 그런데 이「동의매금」이 여러차례 되풀이해서 나온다. 가령 넓은 면의 제5행 끝자가「동」인데, 그 다음 제6행의 처음이「이매금」이어서 문장이 연결된다. 그런데 제6행의「이」가 제1행의「오」와 같은 선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와 똑 같은 것이 제7행의 끝자「동」과 제8행의 처음 3자「이매금」의 경우다.
즉 제1행의「오」, 제6행의「이」, 제8행의「이」위로는 문자가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예가 또하나 있다. 즉 제8행 하단은「전부대사자다우환노△△△」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똑같은 문구가 제2행 끝으로부터 제3행위로 연결되고 있다. 즉 제2행의 끝자「환」과 연결되는 제3행의「노」는 제3행의 첫 자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노」는 제1행의「오」, 제6행의「이」, 제8행의「이」와 같은 선에 자리잡고 있다.
이같이 살펴보면, 이 비문은 정확히 1행 23자로 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떻든 1행의 자수를 확인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이 작업이 이루어지고, 사면의 행수가 알려지면, 문자의 총수는 쉽게 계산될 것이다.

<4>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현재 조사된 넓은 면 제1행의「오월」위에「을해」라는 문자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 면을 비문의 제1면으로 생각하면 제1행에만 난외에 간지를 써넣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아직 그런 금석문은 예가 없다. 그러므로 이 모호한 대목을 근거로해서 건비의 연대를 문자명왕 4년으로 추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오월」위에 간지로건 연호로건 연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은 아직 조사되지 않은 옆 면, 즉 전체의 제2면의 맨 끝에 있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하겠다.
그런데 비문의 상난에는 무언가 문자가 있는 듯한 흔적이 엿보이고 있다. 이것이 지금껏 ㅣ문 1행의 자수를 혼란에 빠뜨린원인이 되어왔다.
만일 거기에 있는 것이 문자가 확실하다면, 그것은 비문이 아니라 제액일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삼국시대 비석에 그러한 예가 없으므로, 이것도 신중한 조사가 요망되는 부분이다.

<5>
비문의 판독이 얼마나 어려우며, 그 한 자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크게 달라지는가 하는 것은 광개토왕릉비를 에워싼 논쟁이 응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모처럼 발견된 귀중한 비에 생명을 불어넣은 작업을, 학계의 온 힘을 기울여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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