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안전위주의 경제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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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징조가 여러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도 물건사기가 힘들고, 돈은 적지아니 풀리는데도 자금난은 극심하며, 기름과 원자재 때문에 가격은 아무리 인상해 주어도 물가의 새로운 안정 정착은 요원하기만 하다. 바깥경기가 좋으면 수출에라도 기대해 보겠지만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 오히려 정세여하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우려조차 없지 않다.
이런 어려운 계제에도 높은 성장도 하고, 중화학도 하며, 수출도 늘리고「인플레」도 진정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은 분명한 오산이 될 것이다.
이 싯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을 모순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래의 환상을 깨는 일이다. 과거에도 해냈는데 지금이라고 못할 것 없지않느냐는 생각에 집착하는 한 지금 겪고있는 고초는 조만간 더욱 뿌리깊은 고질로 바뀌어 치유의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때는 편작·기파가 열이라도 소용없다. 경제란 유기체여서 잘못된 것은 그때그때 고치지 않으면 환부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겪고있는「인플레」압력이나 산업간의 마찰, 민생의 불안정은 단순한 차일시의 여건때문이라기 보다는 요컨대 성장의 잠재력을 넘는 무리한 과속운행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경공업중심의 단순 구조에서는 다소의 무리나 과속이 주는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운명처럼 간주되는 중화학공업만 해도 실로 방대한 재원과 시장을 전제로 한다. 어느 한쪽만의 기만이 흔들려도 그 여파는 심각해진다. 때문에 이런 부문에 대한 투자는 참으로 고도의 신중함과 선별을 필요로한다. 그 기반을 이루는 일반산업·경공업과의 연관성도 고려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이런 고려를 소홀히 한다면 빨래비누·전구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자동차공장이 열 개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수출이 아무리 당위명제라해도「시멘트」·합판처럼 한쪽에서 수출하고 한쪽에서는 품귀소동을 일으키는 일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저런 불합리나 모순의 대부분은 경제의 기반이나 잠재능력을 너무 과대평가 또는 악관하거나 아니면 지나친 실천주의정책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기왕 새경제「팀」이 정책의 대강을 다시 짠다면 너무 여러 가지 일을 다해낼 생각을 버리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우선 한가지라도 근원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자세가 긴요하며 지금은 민생안정이 바로 그 과제가 되어야한다.
거창한 중화학 보다는 모자라는 생필품산업에 먼저 투자하고 실속없고 무모한 수출 보다는 내수시장안정을 우선시켜「인플레」와 물자부족에 대처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자금지원에서도 성역화된 정책자금의 비중을 크게 낮추고 긴축과 저축으로 조성된 재원의 보다 많은 부분을 내수·민생안정위주로 공급하도록 자금계획을 다시 짜야할 것이다. 이런 일은 따지고 보면 경제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단시일안에 완결되거나 즉효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고, 참을성 있게 보다 긴눈으로, 보다 넓은 중지를 모아 하나씩 해결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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