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몰린 진로 경영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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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화의기업 진로의 운명이 갈림길에 섰다. 5년 간 유예됐던 원금상환 연도를 맞은 진로는 지난달 말 대규모 외자유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발표했으나 바로 며칠 뒤 채권자인 골드먼삭스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진로 경영권의 향방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진로는 외자유치가 되더라도 진로가 현재의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외자유치 때 대주주인 장진호 회장이 소유한 주식과 우호지분의 대부분을 외국계에 넘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로 측은 비밀유지 협약상 현재 지분양도와 관련해 정확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로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채권을 모두 흡수해 새로운 투자법인이나 채권단을 형성하는 구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자본금보다 훨씬 많은 외자가 들어오는데 張회장이 기존의 지분을 양도하든 유지하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지분 양도 여부와 관계없이 어떤식으로든 회사 운명이 투자자인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진로의 외자유치 자문사인 삼성증권 관계자도 "도입하려는 외자가 자체적으로 회사를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인 만큼 사실상 기업 인수.합병(M&A)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張회장 등 기존 경영진들이 경영권에 집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로는 외자가 유치되더라도 기존 경영진의 급격한 교체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진로 관계자는 "외자유치 이후에도 현 경영진을 유지하는데 대해 협상 상대방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골드먼삭스의 계열사 세나 인베스트먼트가 신청한 법정관리가 다음달 초 법원에서 수용할 경우 회사 경영권은 법원과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간다.

채권 매입.진로 홍콩법인 파산신청 등으로 그간 진로의 경영진과 갈등을 빚어온 골드먼삭스는 법정관리 신청서에서 진로의 제3자 인수를 요구했다.

국내 채권기관 일부에서는 골드먼삭스에 의한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의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국내 채권기관 한 관계자는 "법정관리 후 기존 주주의 감자와 출자전환을 통해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은 미국에서 적대적 M&A 때 활용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골드먼삭스는 "경영권을 빼앗을 의도가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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