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안정환·앙리·발라크 … 공감 해설이 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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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브라질 월드컵에서 MBC와 KBS는 최대 1000억원의 광고가 걸린 중계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대회 전까지 부동의 1위였던 SBS를 제친 것이다. 지난 23일 한국-알제리 경기 시청률(닐슨코리아 조사) 조사에서 KBS2가 14%, MBC 9.2%, SBS 5.1%를 기록했다. 지난 18일 러시아전에서도 KBS2가 22.7%로 1위였고, MBC가 18.2%, SBS는 11.6%였다.

 안정환(38) MBC 해설위원과 이영표(37) KBS 해설위원이 판도를 바꿨다. 말 잘하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들이 예리하고 재미있는 해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시아 선수 월드컵 최다골(3골) 보유자인 안 위원은 마이크를 잡고서도 과감하고 공격적이다. ‘꽈배기 킥’ ‘땡큐 골’ 등 쉽고 재미있는 신조어를 만들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쉽게 골이 들어갈 때 선수들이 쓰는 표현인 ‘땡큐 골’을 방송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현역 시절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활약한 안 위원은 이탈리아-코스타리카전 중계 중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피를로(35)는 저랑 맞붙었을 때 저렇게 잘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잘하게 돼 부럽습니다”고 말했다. 생생하고 재치 있다. 안 위원은 ‘아빠 어디가’ ‘라디오 스타’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과거의 도도한 꽃미남 이미지를 버렸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은 “안 위원은 화려한 경력을 가졌지만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다. 친근한 언어로 시청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해설을 하고 있다”면서 “매섭게 비판하는 해설의 시대는 갔다. 칭찬만 하는 시절도 저물고 있다. 시청자들과 공감하는 해설로 중계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표 위원은 스페인 축구의 몰락, 이근호의 러시아전 득점 등을 정확히 예측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이영표가 신통력을 발휘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점쟁이 문어 ‘파울’에 빗대 ‘문어 영표’라 불리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우종(38) KBS 캐스터도 지원사격했다. 배성재(SBS)·김성주(MBC) 등 경쟁사 캐스터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보란 듯 뒤엎었다. 김홍범 KBS PD는 “캐스터 목소리는 신경 쓰이거나 어렵지 않아야 한다. 배경음악처럼 들려야 한다”면서 “조 캐스터는 축구중계가 처음이어서 오히려 시청자 눈높이를 잘 맞추고 있 다”고 말했다. 조 캐스터는 “해설위원의 능력과 캐릭터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개성을 죽이고 여백의 미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안 위원과 이 위원의 활약은 축구 해설의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과거 축구인 출신 해설위원들은 표현력이 부족해 비축구인 전문가들에게 밀렸다. 그러나 이젠 말도 잘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축구인이 등장한 것이다.

 외국의 흐름도 비슷하다. 티에리 앙리(프랑스)·개리 리네커·앨런 시어러·리오 퍼디난드(이상 잉글랜드) 등이 영국 BBC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이다. 판니스텔루이(네덜란드)·미하엘 발라크(독일)는 미국 ESPN, 파비오 칸나바로(이탈리아)·파트리크 비에이라(프랑스)는 영국 ITV 해설을 맡고 있다. 브라질 TV에서는 2002 한·일 월드컵 우승 주역인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데니우손(이상 브라질) 등 스타들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구아수=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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