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의도전도 용납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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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기에 희생된 예가 「이탈리아」국영석유회사 (ENI) 의 총재인「엔리코·마테이」였다. 「마테이」는 50년대말 중동에 민족주의선풍이 일어났을 때 이제까지 「메이저」와 산유국사이에 채택됐던 이익을 반분하는 「공동사업방신」보다 산유국측에 더욱 유리한 조건방식인 「합작투대방신」을 내놓았다.
「메이저」의 생산 「카르텔」에 도전한 것이었다.
「마테이」는 실제로 57년「이란」에 이 방법을 제시하여 ENI와 국영「이란」석유회사 (NIOC) 사이에 합작투자 자회사인 「이란-「이탈리아」 석유회사 (SIRIP)를 설립하는데 성공했다.
「마테이」는 또「메이저」의 판매「카르텔」에도 도전하여 60년대초 무진장으로 남아도는 소련의『붉은 원유』를 끌어들여 「이탈리아」등 「유럽」시장에 「메이저」 석유보다 훨씬 싼값으로 공급했다. 타격은「유럽」 시강을 석권하고 있던 미국계「엑슨」과 영국계IPC (「이라크」석유회사) 가 특히 심했다.
그러나 「마테이」의 꿈은 62년10월 「시칠리아」에서 「로마」로 돌아가던중 의문의 비행기추락사고로 무참히도 허물어졌다.
「메이저」를 가리켜 「레·세테·소렐레」 (「일곱 자매들」이라는「이탈리아」어)라고부름으로써 「세븐·시스터즈」라는 말을 창조했던「마테이」도 행운의 숫자 7은 결국 무너뜨리지 못하그 비명에 간 것이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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