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제의 돼지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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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열대의 햇볕이 뜨겁게 쏟아져 내리던 지난12월26일 하오5시31분.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선내에 울려 퍼졌다.
『지금 본선은 적도를 통과하고 있읍니다.』-이종섭 2항사의 안내방송이었다.
그러나 바다엔 아무런 표지가 없고 시퍼런 바닷물이 묵묵히 출렁일뿐이다. 「사이렌」은 방25동안 계속됐다. 길이 1백4m인 남북호의 선수가 적도를 「터치」하여 선미가 적도를 완전히 넘어설때까지의 소요시간이다. 당시 속도는 13.5「노트」.
적도제가 치러졌다. 돼지머리 3개와 과실·떡·과자·북어등으로 상을 차리고 허종수조사단장과 이우기선장이하 사관급 선원들이 나와 큰절을 했다. 낯선 바다에 들어서면서 이 해역을 다스린다는 적도의 여신에게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선원들의 전통적 의식의 하나다.
제사가 끝나자 맥주·소주·정종이 지급되어 전 선원과 숭객들이 「파티」를 벌였다. 노래가 나오고 춤이 벌어진다. 젊은 선원들이 「기타」「아코디언」을 들고나와 갑판은 흥겨운 놀이터가 됐다. 1월17일 남극어장에 도착해서도 비슷한 풍어기원제가 있었다.
적도제는 선상생활의 즐겁고 화려한 부분을 한데 모아놓은 하나의 축제다.
KBS「라디오」방송은 남위40도까지 들렸고 평양방송은 남극어장에서도 단파수신기에 잠깐 잡힌적이 있다. 합동통신사가 「모르스」부호를 발신하는 한국어「뉴스」는 남위30도까지 수신됐다. 통신가청지역에선 매일 각 식당에 그날의 「뉴스」가 게시된다.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남극해안에서 수시로 들을 수 있었지만 잡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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