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있는 남북대화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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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마침내 실현된 남북한의 판문각 접촉은 일반의 예상대로 결국 평행선을 걷고말았다.
물론 이날의 접촉에서 남북직통전화의 재개원칙과 다음 접촉의 시·소에 관한 언질을 받은 것은 일단 국면의 한걸음 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이번 경우 대표의 자격, 접촉의 목적, 의제, 장소등 모든 문제에 있어 쌍방이 주장을 달리했기 때문에 회동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접촉자체에만 의의가 있을뿐 구체적 성과나 진전은 없으리라고 본 것이 많은 사람들의 솔직한 견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두어가지 점에서 긍정적반응이 있었다는 점은 어쨌든 대견스러운 일이다.
쌍방이 그처럼 현격한 주장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수년만의 첫 대좌에서 그 정도나마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대화가 이어져야만 한다는 남북한 5천만민족의 절실한 염원과 대화와 개방을 지향하는 세계의 대세때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반도주변 강대국간의 정상급 내왕과 그들간에 고창되고 있는 평화와 전쟁회피원칙의 확인등에서 보는 국제정세의 추이는 남북 어느 쪽이든 대화기피를 고집할 수 없게 만드는 국제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셈이며, 북한이 마침내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 「테이블」에 나오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되는 일이다.
북한으로서는 대화를 깨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속셈도 작용했으리라고 짐작되나 짐짓 이런 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이번의 일보진전이 앞으로의 대화발전을 위한 귀중한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주기를 바랄뿐이다.
물론 이번에도 우리측은 회담장소에 있어서나 대표자격문제등에 있어 폭넓은 자세를 취했고 이로 말미암아 이날의 접촉실현도 가능해진 것이지만 이런 점도 구태여 강조해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같다.
뭣보다도 대화의 재개와 건설적인 합의의 축적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어느 쪽의 「이니셔티브」로 이루어졌는가하는 점은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도 우편물공세 따위의 대화를 한낱 전술적 방편으로 삼으려는 불성실을 버리고 진지한자세로 나와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북한측은 이날회담에서 모처럼 남북직통전화재개원칙에 동의하고서도 굳이 쌍방간에 합의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통일준비위원회」대표들간에서만 전화를 하자는 주장을 했다는데, 그것은 아직 그들에게 대화문제에 관한 성실한 자세확립이 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쌍방의 합의에 따라 양측 조절위간에 기왕에 설치됐던 전화를 재개하자는 평범한 순리를 버려두고 책임과 권한이 모호한 일방적인 기구인「통일준비위」대표간에서만 전화를 하자고 해서야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누가 보아도 직통전화를 미끼로하여 그들의 일방적인「통일준비위」를 기정사실화 하겠다는 잔꾀라고 공박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북한측이 이 문제에 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이 동의한 직통전화 재개원칙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결국 그들에겐 직통전화를 활용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직통전화는 그들이 강조해 마지 않는 7·4공동성명의 합의사항(제5항)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기서 다시 한번 지적해 둔다.
또 대화창구에 있어서도 북한은 외곽단체인「조국전선」대표를 내세울게 아니라 배후의 북한당국이 직접 나서는 솔직성을 보이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현명하지 않겠는가.
3월7일의 재회동이 결정된 이상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열리게 된셈인데, 그렇다면 제의와 합의에 대해 실시를 보장할 권능과 책임을 가진 당국이나 조절위가 대화에 직접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의 첫 접촉에서 제기된 문제만 해도 실로 양측이 다같이 심각한 영향을 받는 정치적 민족적 문제이며 남북의 몇개 사회단체가 결정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측 대표가운데는 「상급」인물과 노동당간부가 포함돼 있다고 하나. 그들의 자격과 형식은 어디까지나 「조국전선」 서기국이 선정한 대표에 불과하므로 그들이 가진 직책과는 무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말대로「조국전선」이 책임있는 기관이라면 도대체 북한의 공권력은 북한당국에 있는지, 「조국전선」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명백한 논리에 억지로만 대응할게 아니라 다음 회담에서부터라도 북한당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나 평양측 조절위가 대표로 나오기를 거듭 촉구한다.
이번 남북의 대좌는 국제적으로도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북한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접촉현장에는 다수의 외신기자들도 나와 있었다고 하니 어느쪽 주장이 건설하고 합리적인 것인지 그나름대로의 평가도 곧 전해질 것이다.
우리측 조절위대표를 일방적으로「통일준비위」연락대표라고 규정짓고 대화를 나눈 북한측의 기묘한 자세도 결코 간과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뭏든 모처럼의 남북대좌가 이루어지고 있는만큼 체면이나「이니셔티브」여하를 떠나 성실과 인내로 임하는 노력이 요망되며, 국제사회에서도 결국엔 더 성실한 측이 더 높은 평가를 받게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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