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화해냐… 격돌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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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대통령의 1·19제안이 있은지 10여일간 남북한사이에는 대화의 형식 문제를 둘러싸고 성명전이 되풀이되고 있다.
1·19제안은 대한민국의 원수인 박대통령이 공식으로 남북대화를 성의껏 촉구한 것이고, 남북당국간의 대화를 희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이름으로 7·4공동성명의 준수를 다짐하는 성명을 남북한이 내자고 하면서 「전민족대회」의 소집을 지리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른바 「조국전선」이라는것은 6.25전쟁전부터 조직되었던 북괴노동당의 통일전선표현단체이고 동당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구차스러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따라서 북괴가 소위 「국가주석」이라고하는 김일성의 이름으로 대답을 하지않고 그 꼭둑각시의 꼭두각시를 시켜서 성명을 내고있다는 사실부터가 한국에 대한 모욕이요 참을수 없는 오만불손이다. 그뿐더러「조국전선」의 성명속엔 중대한 자가당착이 여실히 노출되고 있다.
첫째, 그들은 남북당국자간의 대화로써 긴장을 풀고 평화통일의 기운을 성숙시키려는 7·4공동성명을 존중한다 하면서 얼토당토않게 「전민족대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북괴가 진정으로 7·4공동성명을 준수할 생각이라면 「조국전선」이라는 한낱 허수아비단체가 성명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는 없다.
위와같은 논리의 지리멸렬은 북괴가 1·19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전무하고, 남북대화에 응하는 것처럼 하면서 정치적인 장난이나 쳐보겠다는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다.
북괴는 오래전부터 남북한간에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열어 평화와 통일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이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라는 말이 매력을 잃게 되자 표현을 바꾸어 「대민족회의」를 열자고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또다시 표현을 바꾸어 「전민족대회」소집 운운하게 된 것이다. 북괴가 l·19제안에 대해 「전민족대회」 안을 들고 나온 속셈은 무엇인가?
그들은 이 안을 내세움으로써 7·4공동성명을 백지화하고 동성명에 근거를 두고 설치된 조절위원회를 명실공히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그들은 이안을 내세움으로써 한국정부대표의 참가를 배격하고, 혹은 참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정부를 한낱 정다사회단체와 동격인 하잘것 없는 존재로 추락시키고자 하는것이다. 그들은 이안을 내세움으로써 한국을 여러모로 파괴하고 남한사회를 정치적인 혼란의 도가니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 기회를 붙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안을 내세움으로써 남북대화를 열망하는 5천만 민족의 염원과 평화를 애호하는 세계의 여망에 순응하는 것처럼 하면서 기실은 대화를 통한 평화성숙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무력남침과 「남조선혁명」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괴가 주장하는대로 전민족대회가 열렸다고 상상해보자. 정당·사회단체의 대표, 혹은 무당무파의 개인이 수천명 모인 이 대회에서 북괴는 주한미군철수촉구를 비롯해 대한민국에 불리한 갖가지 결의안의 통과를 서두르면서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른바 「남북연방제」 채택을 합리화하고자 할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자위의 입장에서 북괴측 주장의 부당성·허구성을 들추어내면서 평화통일에의 첩경은 바로 남북한간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임을 역설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간 좌우익간의 「이데올로기」상, 통일정책상 격돌은 불가피해질 것이요, 대회는 두 조각이 나서 제각기의 입장에서의 결의안을 서로들 별도로 채택하고나서 상대측의 수락을 강요코자 할것이다.
30여년간이나 지속해온 남북한간의 숨가쁜 대결은 「이데올로기」상, 사회체제상, 정치권력상의 대립이다. 따라서 이 대립을 완화, 해소하려면 분단은 일단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나서 분단이 자아내는 민족적인 고통과 희생을 덜고, 대립이 자아내는 긴장을 풀고 전쟁을 막고 평화통일의 정신적 기반인 동족의식과 상호신뢰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해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어디까지나 동족간의 대화를 주축으로 해서 성립되는 남북한간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남북한간 합의는 책임있는 당국자 간의 조용한, 그리고 인내깊은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수 있다.
당국자간의 대화중 가장 바람직스러운 형태는 7·4공동성명의 소산인 조절위원회기능을 약속했던대로 전면 발휘케 하거나 혹은 남북한간의 각료급회담을 거친후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현안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대화의 목적이 화해를 촉구하는데 있고, 격돌을 피하는데 있는 것이라면 당국자간의 조용한 대화를 바라는 한국측의 주장과 떠들썩한 군중대회를 열자고 하는 북괴측의 주장중 어느 것이 타당한가는 불문가지라 하겠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으므로 북괴가 말하는 「전민족대회」 안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대회는 반드시 남북한간 격돌을 자아내고, 대화를 통한 화해의 기운을 일시에 무산시키고, 남북한관계를 현재 이상으로 악화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를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북한당국은 그 허수아비를 시켜 어리석은 정치적인 장난이나 쳐볼 생각은 숫제 그만두고 우선 당국자간의 예비회담개최에 응해야한다. 이 예비회담에서 본회의개최의 일자·장소, 그리고 대화의 형식을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북한공산단체의 엄중한 반성을 촉구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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