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안 지켜 입은 윤화는 피해자 책임"|정류장 진입하다 소년 친 운전사|대법원 무죄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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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아 「버스」정류장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 경우 피해를 본 시민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새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은 6일 『질서는 시민 스스로가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았을 경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밝히고 정류장으로 「버스」를 몰고 들어가다 밀려든 승객 때문에 사고를 낸 시내「버스」운전사 이상우 피고인(45·부산시동래구안악동483의5)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고속도로·고가도로 등 보행금지구역을 지나거나 육교를 두고도 마구 길을 건너다 일어나는 사고 등 피해자가 「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사고」의 경우 가해운전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예는 있었으나 「질서를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처음.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에 대해 법조계는 『고도의 경제성장속에 경시되어온 시민의 질서의식을 일깨워준 훌륭한 판례』라고 지적했다.
이피고인이 사고를 낸 것은 77년11월15일 상오7시50분.
이피고인은 「러시아워」에 부산5자2201호 시내「버스」를 몰고 부산진남구광안동 등대다방앞 「버스」정류장에 차를 세우려했다.
이때 「버스」정류장에는 40여명의 승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들은 이 「버스」가 미처 서기도전에 먼저 타려고 「버스」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피고인은 「버스」를 타려던 조모군(12·부산D중학교1년)이 혼란 속에 승객들에게 밀려 넘어진 것을 모르고 그대로 차를 몰아 오른쪽 뒷바퀴로 조군을 치었다. 조군은 왼쪽 팔에 전치2주의 상처를 입었다.
이때 이 「버스」의 속도는 시속 5km정도. 이씨는 안정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해 12윌12일 부산지검에서 업무상과실치상혐의로 벌금 7만원에 약식 기소됐다.
그러나 이씨는 『이 사고는 피해자 또는 승객기리의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 부산지법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이에 부산지법은 78년2월3일 『다른 승객에 밀려 넘어지는 것까지 운전사가 살펴야할 주의의무가 없다』고 밝히고 이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같은 판결에 대해 ▲40여명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 사고를 예상할 수 있었으며 ▲이 경우 차를 멈추거나 경적을 울려 승객들을 피하도록 했었어야 한다고 주장, 항소했다. 그러나 부산지법 항소부 역시 1심 재판부와 같은 이유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78년9월6일)했다.
잇달아 무죄선고가 내려지자 검찰은 두 가지의 항소이유 외에 『자동차가 행인을 전혀 치지않았다 하더라도 행인이 피해를 보게되면 운전사를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판례(78년10월2일)를 덧붙여 이피고인을 처벌해야한다고 상고했다.
검찰이 내세운 이 판례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10대 소년이 갑자기 앞길을 막은 「버스」를 피하지 못해 땅바닥에 쓰러져 숨진 사건에 대해 내려졌었다.
당시 대법원은 『비록 자동차가 직접 충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전거의 앞길을 가로막음으로써 자전거를 타고 가는 행인이 넘어지거나 차에 부딪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지적, 가해운전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었다.
따라서 검찰은 『「자전거사고」의 경우 사고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사를 처벌했다』고 들고 「정류장 사고」의 경우에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검찰주장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피고인에게 원심대로 무죄를 확정했다. 이 판례가 나오자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주장은 법조문 자귀(자귀)에 매달려 해석한 것이며 ▲법원은 건전한 시민의식을 강조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일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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