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클왕' 한국영 … 양팔에 깁스한 채 뛴 독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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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이 몸을 던져 러시아 파이줄린을 막고 있다(왼쪽). 한국영은 2002년 월드컵 당시 김남일을 능가하는 ‘신 진공청소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골키퍼 정성룡은 4차례 선방을 기록 했다. 정성룡이 코코린을 앞에 두고 펀칭하는 모습. [쿠이아바 AP·로이터=뉴시스·뉴스1]

“내 유니폼이 모든 선수 중 가장 더러워져야 한다. 진흙으로 범벅이 돼야 한다고 다짐했다.” 러시아전 선전의 숨은 공신인 한국영(24·가시와)의 소감이다. ‘신형 진공청소기’ 한국영은 러시아전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김남일(37·전북)처럼 상대 선수를 빨아들일 듯한 수비력을 선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은 한국 선수 중 최다인 11.356㎞를 뛰었다. 한국이 태클로 다섯 번 공을 따냈는데 그중 세 번을 한국영이 해냈다.

 한국영도 이근호처럼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현지 훈련 도중 왼발 통증이 심해져 낙마했다. 부상을 숨겨 팀 전력 약화를 가져왔다는 오해도 받았다. 사실은 홍명보 당시 올림픽팀 감독이 “난 널 끝까지 데려가고 싶은데 넌 어떠니”라고 물었고, 한국영은 “이 발로 팀에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뒤 스스로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영은 “2007년 17세 이하 월드컵 때 윤빛가람(24·제주)의 플레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난 그저 그런 공격형 미드필더였다”며 “2010년 일본 J리그 쇼난에 입단했는데, 당시 감독님이 ‘생각 없이 움직인다. 몽유병 환자 아니냐’며 호루라기를 집어던졌다. 알고 보니 감독님이 공격 재능보다는 수비 재능을 알아채고 채찍질한 거였다.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한국영은 학창시절 새벽운동을 나가다 동료들을 깨울까 봐 매일 식당에 이불을 깔고 잔 ‘독종’이다. 경기장 라이트를 맨 처음 켜는 것도, 제일 나중에 끈 것도 한국영이었다. 한국영은 “쇼난 시절 양팔에 깁스를 한 채 3~4경기를 뛰었다. 감독님에게 스로잉만 안 던지면 된다고 설득했다. 당시 내 별명이 도라에몽(손에 깁스를 한 듯한 만화 캐릭터)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영은 육군 중령 출신인 아버지 한정용씨의 끈기를 물려받았다. 한씨는 전역 후 1년간 독서실에서 하루 18시간씩 공부해 예비군 지휘관 시험에 합격했다.

 한국영은 지난해 3월 대표팀에 첫 발탁됐다. 한국영의 어머니는 “국영이는 항상 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태클을 너무 많이 해 늘 엉덩이와 허벅지가 빨갛게 쓸려 있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한국영은 “나도 태클이 무섭고 아프다. 하지만 난 기성용(25·스완지시티) 형처럼 볼을 잘 차는 선수가 아니라 몸을 던져 희생해야 한다. 태클은 상대 공을 뺏고 싶은 집념에서 나온 거다”며 “난 이번 월드컵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목표는 8강이다”고 말했다.

 골키퍼 정성룡(29·수원) 역시 러시아전에서 명예회복을 했다. 정성룡은 월드컵 개막 전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선수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슬럼프로 어이없는 실점을 내준 뒤 ‘정성룡 무용론’이 대두됐고, ‘정성룡 실점 후 나라 잃은 표정’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성룡은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처음 축구할 때 살던 마을로 이사 갔고, 독한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 중 가족과의 연락, 인터넷도 끊고 조용히 칼을 갈았다. 정성룡은 러시아전에서 한 골을 허용했지만 4차례 선방으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쿠이아바=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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