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운 (73)은 식자공 출신의 노동 운동 지도자로 1940년에 당 정치 국원이 됐으며 중공 건국 후 문혁 때까지 부수상으로 재임하면서 중공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노련한 경제 전문가다.
56년 당부주석에 선출됐던 진운은 문화 대혁명 때 『유소기의 재정·경제면의 두목』이라는 비판을 받고 한때 실각했으나 69년에 복권되었고 75년에는 전국 인민 대표 대회의 상무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전 수상 주은래 계열의 온건 실무파다.
진운 (73)은 식자공 출신의 노동 운동 지도자로 1940년에 당 정치 국원이 됐으며 중공 건국 후 문혁 때까지 부수상으로 재임하면서 중공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노련한 경제 전문가다.
56년 당부주석에 선출됐던 진운은 문화 대혁명 때 『유소기의 재정·경제면의 두목』이라는 비판을 받고 한때 실각했으나 69년에 복권되었고 75년에는 전국 인민 대표 대회의 상무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전 수상 주은래 계열의 온건 실무파다.
Posted by 더 하이엔드
Posted by 더 하이엔드
Posted by 아모레퍼시픽
Posted by 더 하이엔드
Posted by 더존비즈온
ILab Original
메모를 삭제 하시겠습니까?
중앙일보 회원만열람 가능한 기사입니다.
중앙일보 회원이 되어주세요!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이 궁금하신가요?
중앙일보는 뉴스레터, 기타 구독 서비스 제공 목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이용 합니다. ‘구독 서비스’ 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동의를 거부 하였을 경우 이메일을 수신할 수 없습니다. 구독 신청을 통해 발송된 메일의 수신 거부 기능을 통해 개인정보 수집 · 이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