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규 기자 종군기] "아내·아들 볼 날 멀지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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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사처럼 전장(戰場)에도 '운명의 갈림'이 있다. 병사들은 보직에 따라 운명의 길이 갈라진다. 정비중대 병사들이 길을 잃고 이라크군의 기습을 당해 거의 몰살된 사건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보급병이나 정비병보다는 전투병이 위험에 훨씬 가깝게 가 있다.

현재 걸프지역에는 모두 34만명의 미군과 영국군이 포진해 있다. 이 중 대표적으로 항공모함의 수병들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라크 국경이 제1차 위험선이다.

12만5천여명이 이 선을 넘었다. 그들 중에서도 바그다드 중심부에 들어가 있는 3사단 보병들이 죽음의 위험에 가장 근접해 있다. 어제 3사단 작전센터는 이라크의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았다.

위험도와는 정반대로 종전(終戰)에 대한 희망은 전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수십km 떨어진 후방에서 듣는 전황으로는 미국이 곧 승전을 선언할 듯하다.

3사단이 바그다드 시내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6일 오전 5시(현지시간). 내가 동행하는 16지원단 181대대 515중대는 후방에 있는 캠프 '부시 매스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3사단 전투부대에 보급할 기름을 '어미' 보급기지로 가서 실어오려는 것이다.

오후 3시 차량행렬은 캠프에 도착했다. 모래바람이 시야를 가린다. 자연은 여전하지만 부대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다. 3사단이 공화국수비대 메디나 사단과 격전을 벌일 때만 해도 이곳 캠프는 꽤 위험한 전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말 그대로 후방이다. 병사들은 느긋한 표정이다.

5군단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은 갑옷 같은 화생방복을 벗어던지고 군복만 가볍게 입고 있다. 전쟁의 두꺼운 껍질 하나가 벗겨져 나간 듯하다.

병사들은 종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미 루이지애나에서 3주 전 181대대로 편입돼 온 51수송중대의 마이클 젠킨스 상병은 "한 살짜리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고생의 기억은 잊은 듯 병사들은 참전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한 것 같다. 2개월 전에 온 296수송중대의 카우든 세실 병장은 "헐벗고 굶주린 이라크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 게다가 자유까지 주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정부가 그들을 어떻게 내팽개쳤는지 아느냐"며 "기자가 직접 가서 보라"고 열을 냈다.

5주 전 포트우드에서 온 418수송중대의 세드릭 세라도 중위도 "이라크를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만난 이라크인들은 모두 기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종전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경계했다. 세라도 중위는 "바그다드 함락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후세인 충성파를 제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카르발라 인근 캠프 부시 매스터에서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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