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의 급증과 급 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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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 후 가장 서둘러야 할 것이 통화「인플레」에 대한 대책이다. 연말은 물가 상승기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선거 철엔 아무리 조심해도 통화가 방만하게 늘게 마련이다.
선거 철의 통화격증 뒤엔 반드시「인플레」가 뒤따른다는 것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실감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중에도 상당한 자금 살포가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래서 금년 하반기부터 그래도 명맥을 유지해 오던 긴축 기조가 선거를 고비로 일단 무너진 것이다.
금년 들어 지난 10월말까지 월 평균 1백42억 원씩 늘던 통화가 11월 한달 동안에 1천3백70억 원이 늘고, 12월 들어서도 불과 9일 동안에 1천5백53억 원이 격증했다.
물론 어느 해나 4·4분기엔 통화가 다른 때보다 많이 느는 것이 보통이지만, 금년 같은 격증 세는 결코 일반적이라 볼 수 없다. 추곡 수매 자금 방출 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금년의 통화 증가세는 일종의 이상 현상이다.
선거 자금의 대량 방출에 영향 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반기 이래의 긴축 기조 속에서 생산부문은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성이라 할 수 있는 선거관계 자금만은 이토록 풍성하게 돈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최근 다시 번창하고 있는 사채와 더불어 통화 순환「채널」에 큰 결함이 있음을 뜻한다. 전체적인 통화「볼륨」보다도 통화가 돌아야 할 경로를 돌지 않는데 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선거 철에 통화가 격증했다 하더라도 연말 통화 증가율은 재정 안정 계획에 책정된 30%선 내로 억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3·4분기 중의 통화 증가율이 워낙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추세로 연말 통화 증가율이 30%선이 유지됐다 한들 무슨 뜻이 있을 것인가. 물가안정엔 별 도움이 안 된다. 가장 소망스러운 통화 운용은 절대 수준의 적정화와 더불어 증감에 격변이 없어야 한다.
통화는 꾸준히 점진적으로 늘어야 물가에 마찰이 없고 기업들도 합리적인 자금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통화의 격심한 증감이 반복되면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고 생산 활동은 그것대로 타격을 받는다. 11, 12월중의 통화 격증은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또다시 강력한 통화 회수 책을 쓰면 지난 10월과 같은 자금 곡예를 또 치러야 할 것이다.
금년 통화 정책의 가장 맹점은 통화 격변 폭이 너무 크다는데 있다.
연초엔 통화 증가율이 40%선을 넘어 최고 43.5%를 기록했다.
이것이 2·4분기에 30%선으로, 다시 3·4분기엔 17%선까지 내려갔다가 연말에 30%선으로 치솟고 있는 것이다.
가장 자금난이 심각했던 지난 10월말엔 통화 증가율이 연율 12.4%까지 떨어졌다.
같은 해 동안의 통화 증가율이 최고 연율 43.5%에서 최저 12.4%까지의 진폭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통화 정책이 얼마나 일관성 없게 운용되었나 하는 것을 잘 나타낸다.
이 때문에 금년에 미증유의 부동산·증권파동과 심각한 자금난을 동시에 겪은 것이다. 최근의 통화 격증도 9월 이후의 긴축에서 급격히 팽창됐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국민경제가 온탕·냉탕을 반복하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통화 운용에 좀더 일관성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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