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로 갈린 당과 락|조홍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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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금도, 조직도, 관록도 없이 맨 주먹만으로 뛰어도」 선거 전쟁이 이처럼 어려울줄은 몰랐읍니다. 그러나 자신을 갖게됐습니다. 민의의 소재가 어디있는지 파악 할수있었읍니다.
조홍규씨는 실패로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말한다.
출마를 결심한 동기는『호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싶었읍니다. 국민들은 기성정치인들에게 많은 실망을 느끼고 있어요. 새로운것을 갈구하고 있읍니다』 전남 광산의 젊은이들에게 「조홍규 붐」이 일어 이곳 젊은이들은 조후보를 지지하는 「광산당원」이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광산당」은 5명후보중 4명이 모두 나주출신 이어서 생긴 말이다.
- 고전한 이유는.
『준비기간이 전혀 없었는데다 무엇보다도 돈이 딸려 졌읍니다. 선배 정일형씨가 지원한 돈과 「지프」1대, 그밖에 동창들이 낸 성금등 5백만원으로 선거를 치렀어요』 운동원들은 일당 5백∼1천원을 받아 라면·자장면등으로 식사를 때웠다고 했다.
선거본부는 광산군 송정읍의 어머니 (59) 셋방.
- 소감이 있다면.
『지금의 중선거구제도는 자칫 지역감정만 유발할 우려가 있어요. 몰표를 몰아준 광산군민들에게 미안합니다.』 조씨의 득표중 광산군표만 2만2천3백57표로 82%에 이르며 나주에서는 최하위의 득표였다. 광주일고를 거쳐 고대정외과 (4년중퇴) 재학시는 학생운동의 맹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신민당기관지 「민주전선」의 전 편집국장 공천은 신청도 않했다. 빼어난 문장력은 신민당내 제1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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