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인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더불어 각종 산업재해 피해자가 최근 몇 해 동안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 규모도 점차 대형화 되어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 동안 전국의 16인 이상 고용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피해자는 사망 1천 1백 67명을 포함하여 총 11만 8천 3백 1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 전해의 그것에 비해 21·1%나 증가한 것이며 지난 10년간 평균 증가율 12%와 비교할 때 1·75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와 같은 산업재해 발생건수는 그 빈도에 있어서 미국의 4배, 일본의 2배 이상을 기록할 만큼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마디로 우리 나라의 산업안전 수준과 그에 대한 노력이 공업화의 진행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산재에 대한 적절한 예방대책이 강력히 수반되지 않는 한 산업생산이 증가하는 것과 비례해서 인명과 재산의 파괴가 증대되는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산업재해와 그에 따른 직업병의 발생은 바로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권리의 침해를 의미한다.
생명과 건강을 지킬 권리는 인간의 모든 권리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헌법에도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 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기본적 인권으로 규정하고, 노동에 대해서는 근로의 권리를 비롯, 이들 권리를 단체 행동을 통해서 실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재해는 근로자가 노동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저해 또는 상실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근로권의 박탈을 뜻하게 된다.
때문에 기업인에게는 안전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여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일부 기업인들 가운데는 아직도 근로자의 생명이나 건강, 그리고 권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7일부터 시작된 인권주간을 맞아 관계기구가 지적한 인권유린 사례 가운데도 근로자의 권익침해가 전체의 21%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산재요인을 고의적으로 만들어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려는 기업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산재의 위험이 예견되는데도 안전투자를 외면한 채 계속 작업을 시켜 산재를 초래했다면 이것은 근로자의 권익을 처음부터 가볍게 여긴 소치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의 안전투자는 근로자의 건강 보전과 권익옹호를 위해서는 물론 생산시설의 보호와 생산력 증대라는 기업 자체의 경영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필수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고가 빈발하는 기업체가 경영이 충실할 리 없고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무관심한 사업장이라면 종업원의 사기가 높을 리 없다. 사고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그「이미지」도 흐려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볼 때 산재 예방을 위한 기업의 안전투자와 안전관리는 곧 기업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산업안전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에스·스틸」사의 「게리」사장도 『안전시설과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투자한 돈은 결국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우리 나라 기업인들도 외국의 기계와 기술만 도입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안전기술을 도입하는데도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