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의 겉과 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작금의 등소평 발언으로 보아 중공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자보 운동이나 여론 활동 및 일부·체제 연화 요구는 밑으로부터의 자생적 활동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계산된 조작 활동임이 점차 확언해지고 있다.
그 동안 중공의 관영 언론과 벽 신문들이 제기한 몇 개의 「슬로건」들-모의 비신격화·문혁 비판·법제화·과학화·민주 운운-을 두고서, 서방측의 일부 관측자들은 그것이 마치 중공판 「해빙」에의 진통이라도 아닌가 추측들을 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안일한 추측들은 실제 면에서 보나 이론 면에서 볼 때 전적으로 상정할 수 없는 잘못된 가설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우선 실제 면에서 볼 때 몇주일 동안 그렇게 고조되었던 비모 논자나 체제 연화 요구는 등의 「자제 요구」와 「안정 단결에의 호소」 한마디에 씻은 듯 가라앉기 시작했다.
만약 그 운동이 진정으로 비 권력「사이드」의 자발적 비판 운동이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등의 말 한마디로 깨끗이 사그러져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결국 이번의 중공 내 여론 활동이 어디까지나 당과 관 주도의 조작된 선전 활동이었으며, 중공의 비모 운동이 동구인들의 반「스탈린」주의나 반체제 운동과는 본질적으로 같을 수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에 따라 이번의 대중 동원이나 비모 운동은 등소평 권력의 기반과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한계 정략적 수단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운동이 자칫 반 문혁에서 더 나아가 공산당 독재 권력 자체의 연화까지 요구하는 선에 이를 경우 등 일파로서는 그것을 가차없이 탄압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다.
등이 지난달 19일부터 전개된 비모 여론 활동과 체제 연화 구호에 대해 갑자기 제동을 걸고 나온 까닭은 바로 그런 우려 때문일 것이며, 이를 계기로 「비모」나 「반 문혁」 이상의 「체제 수정」 구호는 일시에 자위를 감추게 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아도 중공의 비모 운동이 본격적인 의미의 해빙이나 「민주화」 로 발전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민주주의니 법치주의니 모는 언론 자유니 하는 개념들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이론을 핵심으로 하는 「레닌」주의나 「스탈린」주의, 내지는 공산주의 자체와 본질적으로 양립되려야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이름의 공산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하든지, 아니면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 공산당 독재 원칙을 포기하든지의 둘 중의 하나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점은 오늘의 중공 사정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불변의 원칙이다. 중공의 현 집권층은 모택동 말년과 문혁 후반기의 『일부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있을 뿐, 그 전부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레닌」주의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들이 능하거나 포기한다고 말한 바도 전혀 없다. 그리고 등은 또한 일부 대자보 운동과 그 추진자들이 사물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그 운동의 있을 수 있는 체제 이탈을 엄격히 징계·억제할 뜻도 분명히 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등 일파의 비모 선동이나 그 조종하의 대자보 운동은 철저한 권력 강화적 대중 조작임이 여실하며, 「레닌」과 「스탈린」을 부정하지 않는 중공의 현실에서 위로부터의 체제 연화든 밑으로부터의 연화 요구든 그 어떤 독재 원칙의 연화를 예기한다는 것은 오판일 것이라 생각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