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양악 전병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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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전통문화 중에서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이 아직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도 양악의 그늘 속에서 국악이 받고있는「대접」은 한심하다.「라디오」나「텔리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대부분이 서양풍의 것들이며 국민학교 학생들 중에서「도레미파」를 모르는 아이가 드문 것만큼이나 대학을 졸업한 식자들 중에서「황태중림남무」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 때문에 우리 고유의 가락들은 점점 더 우리 귀에 생소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은 악이 위와 항상 같은 차원으로 취급되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옛날 선비들은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 가락은「음곡」이라 해서 무척 경계했다. 반면 좋은 음악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켜서 화평의 경지로 이르게 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생각하여 음악을 가려서 듣는 일에 무척 까다로 왔던 것 같다.
또 음악이 문란해서 나라가 망했다는 정위지음의 고사를 생각하면 세종대왕께서 박연을 시켜 음악을 다듬는 일에 마음을 쓰셨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들 귓전을 시끄럽게 하는 오늘날의 가락들은 어지럽기 그지없다. 그 대부분은 말초신경을 피곤하도록 자극하는 것들이고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가락들은 간혹 서양의 고전음악에서나 찾아 들을 수 있을 정도인 반면에 옛날 선비들이 귀하게 다루던 음악은 어떤 것인지 들어볼 기회조차 매우 드물다.
음악을 그림에 비해서 생각해 보자.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아이들이 보는 벽에다가 음화를 버젓이 걸어두는 일은 없을 것이며 또 조화의 미를 아는 사람이면 한국식 가구로 아담하게 꾸민 안방 벽에다가 서양화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의 경우는 현재 동양화의 인기가 매우 높아서 다행한 일이지만 음악의 경우에는 그것이 음곡인지 화곡인지도 구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악과 양악이 우리들의 생활 감각에 상대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고 마냥 즐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모든 것이 서양화가 되어 버린 마당에 양악의 아름다움을 외면하자는 주장은 있을 수 없더라도 우리들의 고유한 생활철학 속에서 다듬어진 귀한 가락들이 이렇게 우리 사회 속에서 계속 버림받아서야 곤란한 일이다.
몇 분 안 되는 인간 문화재들이 가시기 전에 그분들의 음악을 널리 펴는 일과, 국립 국악원의 기구 확장, 음악 교과서의 개편 등의 작업을 통해서 어지러운 세상을 좋은 음악으로 다스리는 일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연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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