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발바닥서 타이어 아이디어 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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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재문 금호타이어 디자인설계혁신팀 팀장(왼쪽 둘째)이 디자이너들과 미래형 타이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금호타이어]

오로지 ‘선’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이어 디자이너들이다. 스스로 ‘타이어쟁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가로 220㎜, 세로 30㎜의 공간에서만 움직인다. 선으로 도전해 올 들어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두 개를 거머쥔 사람들을 만났다.

 무게 12㎏. 검은색, 고무. 조건은 간단하지만 전 세계 타이어는 1400여 종이나 된다. 금호타이어에서 생산하는 타이어만도 1000여 종에 달한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금호타이어 중앙연구소에서 만난 이재문(39) 디자인설계혁신팀장은 공을 들여 ‘타이어 디자인’을 설명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똑같은 ‘검은색’ 타이어지만 그의 눈에는 작은 홈, 패턴 하나가 달리 보인다. 모두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타이어 디자인은 과학”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타이어 산업에 있어서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노면과 맞닿는 두꺼운 고무층인 ‘트레드(tread)’의 디자인이 주행성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금호타이어가 별도의 디자인팀을 만든 것은 2006년. 본격적으로 타이어 연구소에 ‘디자인설계 혁신팀’을 세운 것은 2010년의 일이다. 이 팀장과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는 10명. 이들은 2010년 처음으로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iF(International Forum) 디자인상을 탔다. 올 들어선 레드닷 디자인상과 iF상 모두를 받았다.

 타이어 디자이너들이 그리는 선은 0.7㎜. 이 기본선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타이어가 확 바뀐다. 자동차 진행 방향으로 파인 세로 홈은 배수 능력과 직결된다. 가로로 그려진 선은 제동 성능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겨울용 타이어는 깊게 파인 블록 형태의 패턴이 적용된다. 바퀴가 눈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눈을 찍어가며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셈이다. 아이디어는 여러 곳에서 차용한다. ‘게코 도마뱀’도 그중 하나다. 도마뱀 발바닥의 촘촘하게 있는 꼬불꼬불한 물결무늬에서 착안해 타이어 패턴을 만들었다. 헤링본 패턴으로 불리는데 접지력이 좋다.

 타이어 패턴은 모두 똑같을 것 같지만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다르다. 바깥쪽 면은 코너링을 할 때 하중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타이어 패턴을 크게 가져간다. 반면 안쪽은 배수 기능을 강조해 패턴을 잘게 넣기도 한다. 이 팀장은 “타이어가 자동차 연비에 기여하는 부분이 7% 정도 된다”면서 “최근 들어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옮겨가면서 연비 외에도 타이어 소음과 진동까지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무소음 타이어’ 개발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좀 생각이 다르다. 그는 “소음을 낮추려고만 하는데, 사람이 감지하는 음역대가 있다. 동물만이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음역대를 패턴으로 디자인하면 ‘로드킬(road kill)’을 당하는 동물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타이어 시장은 180조원대에 달한다. 금호는 현재 세계 10위권이지만 이 시장을 차지할 수 있는 타이어를 디자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그리는 대표적인 궁극의 타이어는 ‘스피너스 타이어’다. 일반 타이어와 달리 구형(球形)이다. 차가 어느 각도로 회전하더라도 ‘360도 같은’ 성능을 내는 타이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게 ‘자가변형’하는 ‘트랜스포머 타이어’도 그가 도전하고 싶은 과제 중 하나다.

 금호타이어 디자인팀은 최근엔 검정 일색인 타이어에 금호만의 무늬를 넣는 일에 도전했다. 타이어 옆면인 사이드월에 새겨 넣은 것은 금호아시아나의 상징인 ‘날개(wing) 마크’다. 금호타이어는 올해 14개 제품에 이 통일된 디자인 문양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 팀장은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매년 아이디어를 공모하는데 올해 연구소에서 나온 것만 240개”라면서 “역발상 아이디어로 타이어 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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