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이승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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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반은 풀잎이고 반은 사람이다
구두 발이 밟고 가면
나는 더욱 창백하게 외친다.
어느 나라에서 전차를 타고
이 겸손치 못한 도시에 닿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풀잎인
내가 외친다. 크낙한 사랑이
내 귀를 때리며 지나갈 때
나는 푸른 하늘과 놀고
형편없는 환상과 놀았다 바람과
분노와 패배의 도시에서
전차를 타고 어느 날 떠나도
여름 태양 아래 반죽이 되어
반은 풀잎이고 반은 사람인
내가 외치리라 창백하게
지구 끝에서 지구 끝까지
머물 수 없는 풀잎
머물 수 없는 사람
어느 나라에 잠들어야 하나.

<시의 주변>
어떤 사람은 대상으로부터 형태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내면의 환상으로부터 형태를 만든다고 한다. 나는 후자에 해당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구체적 대상의 세계는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상징의 차원에 머무른다. 있는 것은 형언키 어려운 어떤「페이도스」다. 이 시에서는 그것이 존재의 불만으로 드러나는 것 ?다.

<약력>▲42년 춘천 태생 ▲62년「현대문학」지 추천으로「데뷔」 ▲시간『사물A』『환상의 다리』시론집『반 인간』 ▲연세대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현재 춘천교육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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