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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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증권거래법의 제1장 제1조를 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본 법은 유가증권의 발행과 매매·기타의 거래를 공정하게 하며 유가증권의 유통을 정상화시켜 국민경제의 발전과 투자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증권당국의 빈번한 규제로 자율성을 잃은 나머지 마침내는 주가대폭락을 경험한 일반투자가라면 투자가의 보호 운운하는 그 규정의 마지막 구절이 얄밉다못해 어처구니없게 들리면서도 여전히 투자가의 보호라는 말에 미련과 환상을 품게 된다.
흔히 투자가 보호라고는 하나 그 보호가 투자가를 손해에서 지켜준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밑졌을 때는 투자가 자신이 그것을 메우는 도리밖에 없다. 하긴 재미를 보았을 때도 그렇지만 말이다.
그리고 실은 증권시장이 투자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것이 앞선다. 증권거래법에서 말하는 증권시장의 주연은 어디까지나 발행회사이며 증권회사가 그 조연이라고 알면 된다.
그러나 증권시장의 「드라마」는 그 막이 주연의 등장만으로 열리지는 않는다. 투자가, 특히 대중투자가라는 방대한 단역들이 아무래도 필요하다. 그래서 대중 자본주의를 표방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주연이 혼자서 너무 단물을 빨아버리고 언제나 단역이 쓴맛을 보면 제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서 투자가의 보호 운운하는 대목이 따른다.
증권시장은 투자가 없이 성립되지는 않으니만큼 너무 정떨어지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인식이 당국의 솔직한 속셈일 듯도 싶다.
그 증거로 「인사이더·트레이딩」이나 주가조작이 성행했을 때도 적발한 예가 없다. 너무 지나친 「케이스」는 일단 조사해도 증거불충분으로 흐지부지한다. 주가 대폭락으로 투자가가 허탈감에 빠져있는데도 회복책 검토라는 감언만 갖고 외면하려는 투자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려 든다.
오늘의 경제사회는 다소 「룰」이 없는 건 아니나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자가 비둘기를 잡아먹는 멧돼지처럼 약자를 철저하게 짓밟다보면 경제기능이 파괴된다.
투자가 보호는 증권시장에서의 그 같은 약육강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기보다 아주 오래오래 그것을 누리기 위해 투자가가 죽지는 않을 정도에서 보호되는 것뿐이다. <이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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