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 나오는 조카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편을 잃고 세 아들을 데리고 고된 농사일을 하시며 사는 시누님이 오늘은 한결 밝은 얼굴로 오셨다. 그늘 씻긴 모습이라 내 마음도 눅눅해지는데 편지 한 장을 보이신다.
인천 소년원에서 온 조카의 출감소식이었다. 시누님의 맏아들, 곧 내 조카는 지난해 열다섯 나이로 그릇된 청소년과 어울려 좋지 못한 일을 저질렀었다. 그 죄로 소년원으로 가 마음을 닦고, 기술을 익혔다.
시누님이 면회 가보니 생질은 참회의 눈물을 짓고 지난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진지한 모습을 보았다고 하셨다.
2년이 지나 귀향한다는 소식은 어머니로서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집에 있는 두 아들에게 제 형 닮아서는 안 된다고 심한 노동으로 육신이 닳는 교훈을 보여주며 근면과 성실의 마음가짐을 가르치셨다.
돌아올 큰아들의 장사밑천을 예금해 두신 시누님이다. 가을걷이 끝난 논·밭에 마늘을 심어 얻은 품으로 아들의 여비와 의복을 준비해 우송해달라는 부탁을 하신다.
나는 옷 속에 힘이 될만한 책 한 권을 넣어 동봉했다. 곧 돌아올 조카가 이 가을 들판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베어진 볏대사이로 끈질기게 솟아 피는 푸른 가을잎사귀, 그 푸르름을 제 가슴에 옮겨 담높은 울 속에서 짜낸 기름진 밑거름으로 조촐한 꽃을 피우려나.
이 마을 순후한 인정들은 낯선 눈치를 보여주지 아니하고, 흙속에 흙버무리듯 토속의 훈기로 맞아주려나.
새 모습의 기대와 맞이할 인심들을 어여쁘게만 그려보며 11월 하순을 기다린다. 김명수(경북 상주읍 낙양동 109)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