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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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제 오전의 일이었다.
1학년 짜리 작은 녀석 친구엄마께 의논할 일이 생겨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을 천천히 정확히 숫자 하나 하나를 돌리니 잠깐 뒤 신호가 갔다.
『여보세요! 진건이네죠?』
말도 채 끝나기 전에 상대편이 언짢은 기색으로 수화기를 탁 놓아버린다.
너무 순간적으로 당한 일이라 어이없어 하다가 다시 「다이얼」을 돌려보았다. 숫자 하나 하나를 또박또박 돌렸다.
이번에는 나이가 든 목소리의 여자 분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대뜸 『이 여자가 손가락이 잘못됐나, 「다이얼」 좀 똑똑히 돌려…』 어쩌구 해가며 수화기를 부서져라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한동안 멍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억울하고 불쾌한 마음에 같이 욕을 해주지 못한 것이 약이 올랐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그 몰상식한 태도로 전화를 받던 아주머니께 다시 전화를 하여 나는 분명히 옳은 번호를 돌렸는데, 전화국 기계고장으로 신호가 잘못 갔다고 얘기해서 은근히 무안을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다이얼」을 돌리자 이번에는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아 버렸는지 계속 통화중 신호가 울렸다.
4번째 「다이얼」을 돌리니 겨우 통화가 제대로 되어 그 집 엄마와 조금전 일을 얘기하고 웃어넘겼지만 하루종일 기분이 나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전화 오접이 잦은 것일까? 또 「다이얼」을 잘못 돌리거나 전화국 오접으로 잘못 걸려온 전화가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하루에도 몇 통씩 있는 법인데 그때마다 화를 내고 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갑자기 사는 것이 겁나고 싫어지기까지 한다.
그 사납게 나를 몰아치던 낯모른 아주머니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상상되면서 잘못신호를 보낸 전화국 기계를 원망해 보았다. <이춘자(서대문구 연희3동 345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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